축제는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구성원들 간에 노고를 위로하고 단합을 위하여 벌인 최초의 집단의식이며 행위였다. 축제祝祭의 사전적 의미는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 페스티벌(festival). 순화어는 `잔치'이며 지역 사회, 학교, 교회 등에서 여는 행사를 말한다. 주로 음악, 춤, 음식, 스포츠 등이 함께 한다. 축제의 종류는 학교 축제, 영화제, 음악 축제, 지역 문화제, 종교 축제, 록 페스티벌 등 유형에 따라 다양하다.
가을이 축제의 계절답게 시흥도 축제가 넘쳐났다. 많게는 하루에 5~6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축제들을 보면서 시흥의 대표적인 축제인 연성문화제, 물왕예술제, 시흥갯골축제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축제는 26회를 맞은 연성문화제이다. 연성문화제는 ‘연꽃 피는 고을’의 뜻을 함유한 문화제이다. 연성이라는 이름은 1443년 강희맹은 명나라에 진헌부사로 다녀오면서 남경의 전당강에서 연 씨를 가져와 관곡지에 최초로 심었다. 1446년 세조가 연성이라는 별호를 내린데서 시작했다. 연성문화제는 시흥군 시절 금천문화제(1987-1988) 1.2회를 계승하여 1989년 시흥시로 승격되면서 시흥시 주관으로 10월1일 시흥시민의 날 행사로 ‘연성문화제’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했다. 1999년 제11회 연성문화제부터 시흥문화원이 주관이 되어 비둘기동원에서 전통혼례시연, 전통국악공연, 시흥시민의 밤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2005년 17회까지 전통을 잇던 연성문화제는 2006년 예산삭감과 2007년 시흥문화예술제로 통합되어 행사를 치루지 못하게 되었다. 2010년 제 19회부터 강희맹 사신단 행렬 등을 재현하였으며 2011년부터 시흥의 여러 곳에서 치러지던 장소를 관곡지와 연꽃 테마파트에서 개최하며 연성의 의미를 살린 축제로 거듭나 현재에 이르렀다. 2017년 7월22(토)~23(일)까지 시흥시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전통문화축제인 제26회 연성문화제를 다녀왔다. 7.22(토) <연성의 날> 첫날은 고유제 및 청소년 끼발산 한마당으로 댄스 등 공연과 사생대회가 열렸다. 또한 문화가족 한마음 콘서트와 강희맹 사신단 행렬이 있었다. 개막식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고성오광대 공연이 있었다. 상설 프로그램으로는 제3회 연성음풍 전시회(7.17~23)가 생명농업기술센터 연꽃 갤러리에서 전통문화교실 작품전시회가 열렸다. 체험놀이로는 시흥설화 들려주기, 서각, 연꽃 등 만들기, 한자공예, 붓글씨 체험, 페이스페인팅, 전래놀이 등이 행사장에서 이어졌다.
26회 연성문화제 개막 공연으로 중요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공연이 이어졌다. ‘고성오광대’는 경남 고성 지방에 전승되어 온 탈놀음이며 오광대라는 말은 놀이과장 중에 다섯 광대가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오광대는 양반이 청 황 백 적 흑색의 오방신을 상징하는 복색을 갖추고 등장했다. 첫 번째로 문둥광대춤에서는 양반의 자손으로 조상들의 누적된 죄과(罪過)의 업으로 불치의 문둥병에 걸려 출세하지 못하는 문둥이가 골수에 맺힌 비분과 울분을 표현했다. 가장 사람들을 즐겁게 한 것은 비비(영노)마당으로 일명 '비비탈놀음'이었다. 오광대과장에서 여러 양반이 놀고 있을 때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다 잡아먹는 인신수두(人身獸頭 : 사람의 몸에 짐승의 머리)의'비비'라는 동물이 재담을 풀어나갔다. 방청객을 무대에 끌어 올려서 함께 무대를 이끌어 나갔다. 한마당을 이루는 공연이었다.
7.23(일) <민속의 날> 두 번째 날에는 시흥전통문화에술단체 초청공연(한국무용,민요,풍물 등), 시흥시 무형문화재 제59호 군자봉성황제 시연, 문화두레 특별공연(중요 무형문화재 속초 북청사자놀음), 폐막 특별공연(한국전통춤연구회), ‘양명학과 인성교육’을 주제로 한 제7차 지역문화세미나 등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로 실외에서 하는 모든 행사는 취소되었다. 실내에서 하는‘양명학과 인성교육’을 주제로 한 제7차 지역문화세미나 만이 진행되었다.
2017년 7월 23(일) 오후 2시 시흥시 생명농업기술텐터 3층에서는 ‘양명학과 인성교육’ 이라는 주제로 제7차 시흥지역문화세미나가 열렸다. 정원철 시흥문화원장은 “한국 양명학의 발상지 시흥시는 추곡 정제두 선생이 가래울 마을에서 한국 양명학의 체계를 정립한 역사적인 곳입니다. 시흥시와 시흥문화원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는 한편 양명학적 인성교육과 양명학의 생활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금년도에는 지역 내 학교를 찾아가 ‘양명학적 인성교육’ 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정준교(다음세대살림연구소장)의 시흥의 하곡학 ‘4차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전통을 선도하다’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윤경숙(교육문화연구소 연구원)은“도덕적 주체성 함양을 위한 양명학적 접근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사람은 고립되기보다는 관계적 소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삶을 원한다.”며 “인간의 중심에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능력이 있으며 배우고자 하는 동기와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양명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해야한다.”고 했다. 이에 배곧고등학교의 임경묵 선생은 토론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성 회복을 위한 양명학적 접근은 어떤 것”인지 묻고, 또한 “삶의 주인은 나라는 말은 타자와의 관계성이 충분히 고려된 말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사람살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고려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주영경(장곡타임즈 대표)는 ‘양명학과 인성교육’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장곡동의 ‘너도’꿈의 학교는 학생 자질 향상에 그치는 정도는 부족하다고 믿는다. 그곳에서 받은 교육이 동네에 유익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토론으로 나선 심우일 (명문고등학교 교감)은 "인성이란 인간의 고유한 성품이며 인성의 지향점은 인간다운 품성을 갖추는 것"이라며, “또한 양명학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우리 교육 현장은 인간본성에 대한 신뢰와 배움 중심 교육에서 교사와 학생이 상호 교섭하는 어울림중심 교육”이라고 했다. 종합 토론에서는 예정된 시간이 지나면서 까지 질문과 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양명학에서는 아동교육은 시와 노래 예법을 익히며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에 있는 교육자들이기에 예시되는 것들이 현장감 있었다. 가출했던 학생에게 가족을 생각하게 하는 시를 계속 필사하게 했고 그 학생은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의 등굣길에 시를 읽을 수 있게 하면서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양명학과 인성교육’ 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7차 시흥지역문화세미나를 보면서 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연성문화제의 성격을 명확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만이 아닌 ‘양명학적 인성교육’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함으로써 하곡 정제두 선생의 양명학 정신을 확장시키고 이 시대 인성교육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연성문화제의 1회부터 9회까지의 기록들이 시흥시 문서보관 5년 이상 폐기로 관련부처 자료들이 실전되어 내용들을 파악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10회 연성문화제는 보조금 없이 시흥문화원 자체 행사로 치러졌다. 그러다 1999년 11회부터 시흥문화원 예산확정으로 주관이 되면서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2010년 19회부터 연성의 의미를 살린 축제를 기획하면서 강희맹사신단행렬 등을 고유 행사로 넣었다. 연성문화제는 강희맹 학술회의, 유교식 제례인 고유제, 월미두레, 이한기 사료전시회, 군자봉성황제 재현, 시흥 가래울에서 살았던 대한민국 10대 사상가인 양명학의 거두 정제두 선생을 조명하는 등 전통문화, 예술의 생활화를 추진하고 교육의 장으로 만든다는 연성문화제라는 취지에 맞는 차별화된 축제를 지향하고 발전시켰다.
“물왕예술제는 시흥 예술인들의 자존감을 나타내려고 만들었다” 정석영(1954년생)조각가는 결열한 어조로 말했다. 시흥의 3대 축제 중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축제는 24회를 맞은 물왕예술제가 처음이었다. 사단법인 한국예총 시흥지부에서 주관하는 물왕예술제는 시흥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물왕저수지'의 명칭을 사용하여 <물왕예술제>라 정하고, 열악한 예술문화 환경을 갖고 있는 지역 시민들에게 일 년에 한 번 시흥시 일원에서 1993년부터 예술단체들이 심혈로 마련하는 각종 창작예술 활동으로 시흥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있는 대표적인 전문예술문화축제이다. <물왕예술제>는 지역 전문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예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예술행사로 시민들은 예술인들의 창작공연을 직접 감상하고 공유함으로써 예술문화의 가치와 참뜻을 인식하고 시민 모두의 예술행사가 되어 예술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전문 예술인들의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질 높은 예술을 향유하며 지역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재억(1950년생) 시흥예총 초대 회장이며 1회 물왕예술제 추진위원장은 “1992년 사) 한국예총 시흥지부를 (국악, 문인, 미술 음악) 4개 협회로 발족하고 이듬해 문화제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름을 추천받을 때 문인협회 김연식 지부장이 ‘물왕’라는 이름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나오고 느낌이 크다고 제안했다. 의논을 거쳐 1993년 5월17~22까지 제 1회 물왕예술제를 개최했다.”고 했다. “1회 물왕예술제에서는 시흥미협 정기회원전과 아동극, 가곡의 밤, 문학 강연 및 시낭송회, 국악의 향연, 학생음악경연대회 등이 다채롭게 열렸다. 물왕저수지에서 공연 할 때 공터에 솥을 걸고 육개장을 끓여서 대접했다. 재미있게 했다. 우리가 다 무료봉사했다. 한국화약에서 지원해서 불꽃놀이를 했다. 그 외에 축제에 필요한 모든 재원은 후원과 사비로 충당했다. 7년 동안 시흥예총을 이끌고 가면서 당시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쏟아 부었다. 시에서 정식 지원된 것은 1999년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재억 초대 시흥예총 지부장은 1992년 사) 한국예총 시흥지부를 만들 때부터 부천시 예술인들이 시흥은 작으니 예술인들이 친목회나 만들어서 활동하라는 말과 10만도 안 되는 시흥시는 빠르다는 당시 시흥시장과 공무원들의 부정적 시각에서 “오기가 나서 아무것도 모르고 달렸다.” 고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물왕예술제는 온전히 자생적으로 탄생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청년기에 접어든 2017년 24회 물왕예술제를 기록했다. ‘바람이 분다’는 주제로 5월19~21일까지 시흥시청 늠내홀에서 전야제로 국악팀 바라지의 축원부터 시작되었다. 이어서 김정임과 산조춤보존회의 ‘교방입춤’, 소리꾼 김율희와 시흥무용단의 ‘판소리와 현대무용의 앙상블’, 관내영재인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고다운 학생이 ‘소고춤’을 선보였다. 고다운 학생의 공연에 많은 박수로 격려했다. 이어서 김민정과 연성국악단의 ‘경기민요’, 국악팀 바라지의 ‘생사고락’, 타악콘서트 ‘아름다운 동행’은 김원민(한예종교수), 전통연희단 ‘꼭두쇠’, 전통창작그룹 ‘한비’ 시흥연희전통무용단, 비보이와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국악의 멋과 흥이 현대무용과 만나고, 다시 비보이와 어울려 함께 선보인 공연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멋진 공연이었다. 조명 또한 공연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공연처럼 시각적으로 강하게 다가서지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 잔상을 남게 하는 조용한 전시가 열렸다. 건축, 문인, 미술, 사진협회의 연합전이 5월19일(금)~24일(수)일까지 시흥ABC갤러리에서‘바람이 분다’展으로 전시되었다. 각기 다른 예술의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들과 공감을 나누는 전시가 열렸다. 그러나 협소한 장소로 인해 그 감동이 반감되었다. 20일(토) 시흥ABC행복학습타운 ABC홀 앞에는 시작 전 부터 긴 줄이 서 있었다. 개막공연에 JTBC 펜텀싱어 출신인 듀엣 백인태, 류슬기가 출연하기 때문이었다. 개막공연은 밀레니엄오케스트라(지휘 서희태)와 정상의 성악가, 첼로의 협연으로 시작했다. 관내영재인 소프라노 배우리(이화여자대학교 3학년 재학중)의 협연과, 심혜원 첼로니스트, 바리톤 장철준, 뮤지컬배우 류수화의 협연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열화와 같은 팬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백인태, 류슬기가 뮤지컬<지킬과 하이드>중에서 ‘지금 이 순간’ 등을 부르고 막을 내렸다.
폐막공연은 21일(일) 옥구공원 조가비 무대에서대중예술 공연이 펼쳐졌다. 대중가수 태경, 희담공연예술단의 융․복합퍼포먼스, 대중가수 장미화, 박건아에 이어 김진영 마술사의 화려한 마술이 펼쳐지며 사물놀이팀 ‘맥’과 가수연희의 공연과 박찬일 악단과 비보이가 만나 다이나믹한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며 트로트의 4대 천왕이라 일컫는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출연해 제24회 물왕예술제의 대단원의 막을 장식했다.
물왕예술제의 태동은 시흥에서 예술인들의 열정과 재능기부와 사비를 출연해서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뜨겁고 풍성하게 예술제를 만들어낸 축제였다. 정석영(1954년생) 조각가는 “시흥예총은 이재억 초대회장을 잊으면 안 된다. 그분은 젊은 날의 정열과 사재를 털어 시흥예총과 물왕예술제를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고 했다.
물왕예술제의 역사를 보면 순탄치만은 않았다.
93년 제 1회 물왕예술제가 시작되고 시 예산을 받은 것은 1999년 제7회 때부터였다. 지역예술인과 자발적 참여와 후원, 개인의 희생으로 축제를 열었던 물왕예술제는 역설적으로 시 예산을 받으면서 비판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2006년에는 시흥시 예산을 받지 못했다. 2007년도에는 연성문화제와 합쳐져 시흥문화예술제를 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와 2017년 제 24회 물왕예술제가 열렸다. 시흥시 예술인들과 초청된 외부 예술인들의 성대하고 화려하게 펼쳐지는 향연을 보았다. 외부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다소 염려되는 부분은 동적인 공연은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데 정적인 예술분야인 문인협회, 사진협회, 미술협회, 건축가협회의 작품들은 한 공간에 작게 배치해서 답답하게 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이 작게 배정되어 생각의 확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흥시의 3대 축제 중에 가장 늦게 시작된 시흥갯골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2017년 유망축제로 선정되었고 가장 외부적으로 알려진 것은 축제일 것이다. 시흥갯골축제는 국내 유일 내만 갯벌이며 온갖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인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2006년 제1회 시흥갯골축제가 열렸다. 시흥갯골축제만이 가진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발전해 온 결과 1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경기도10대축제’ 중 하나로도 선정되었다. 제1회 시흥갯골축제위원장은 엄정수 부시장이 시흥갯골축제집행위원장은 정석영 조각가가 맡았다. 정석영(1954년생) 제1회 시흥갯골축제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1987년 시흥에 처음 와서 시흥갯골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2002년도로 기억하는데 정책기획단 1기 때 시흥갯골을 고유명사화 하는 작업과 생태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자는 말을 했다. 하나의 묶음으로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보존과 활용이 난제였다. 시흥갯골축제도 보존과 활용을 잘 조화시키는 그러한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1회 축제는 시민들의 저항 없이 30%로부터 한다고 했다. 10%로 상승하면 7년 후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예산은 3억 원 정도였다. 그때 예산으로는 파격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상수도, 정화조, 도로 등 아무런 기반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각 부서에서 협조해서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과 보안문제였다.”고 회고했다.
제12회 시흥갯골축제가 9월22(금)~24(일)까지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개최됐다. 모두가 즐기는 축제를 지향했던 제12회 시흥갯골축제는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갯골패밀러런에서는 12가지 미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린이들은 미꾸라지를 잡고 곤충나라를 탐험하는 등 놀이를 통해 축제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야외음악당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가볍게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즐겼다, 공연하는 사람들 뒤에는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천이 내려진 곳에서 어린이가 엄마의 치마 고리를 잡고 노는 듯이 뛰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시설을 장치하는데도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나무에 기둥을 만들 때에도 고무 밴드로 나무를 감싸서 나무를 최대한 보호했다. 소금왕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소금밭에서 소금컬링을 하고 놀았다.
소금창고 인형극장에서 연극을 했다. 바닷물이 소금이 되기까지 시흥갯골에서 만나는 퉁퉁마디와 새들. 염부의 땀방울까지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어린이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해 주었다. 넓은 행사장 주변에는 코스모스 등 가을꽃들이 지천이었다. 사람과 꽃이 하나를 이루었다. 어쿠스틱음악제에는 하림, 슈가볼, 여행스케치, 심수봉 치즈, 소란, 안치환, 한영애 등이 초대되었다. 시흥갯골축제의 마지막 무대는 시흥청소년들의 시흥댄서(토요일)과 시흥래퍼(일요일)이 공연했다. 축제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열정에 넘치는 무대를 지켜보며 환호했다. 제12회 시흥갯골축제를 기록하면서 시흥시의 각 동과 시흥시청과 임시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함으로써 차 없는 축제가 자리를 잡아 간다는 생각을 했다.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차로 이동했을 때보다 편했다. 또한 쓰레기가 없는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쓰레기를 치운 자원봉사자들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던 점은 시흥갯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사행성 갯벌까지 오게 하는 힘이 적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12회 시흥갯골축제에는 14만 2천여 명이 방문해서 성공적으로 마쳤다. 3대 축제 중 유일하게 1회부터 12회까지 전체를 기록한 것이 시흥갯골축제였다. 12년을 지켜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축제 초기에 비가 내리면 축제장 전 바닥이 갯벌이어서 발이 빠지고 아예 근동의 어린이들은 장화를 신고 축제장을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시흥 시민들이 지역별로 공동으로 만들고 운반하던 어형선의 행사가 2 회 만에 그친 것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어형선들이 갯벌에 묻히는 것을 예상 못했지만 좀 더 지켜보고 발전시켰으면 시흥만의 축제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순수 경선으로 치러지던 어쿠스틱음악제가 초대가수들을 부르는 음악제로 바뀐 것이 아쉬었다. 유명 가수들은 1회 행사로 끝나지만 시흥갯골축제에서 배출된 수상자들이 커갈수록 시흥갯골축제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장마로 인해 축제가 9월로 바뀌면서 비로 인한 걱정은 덜해졌지만 기간을 시흥갯골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10월초나 중순으로 바꿔 칠면초가 붉게 타오르고 모세달과 갈대가 일렁이는 시기로 맞춘다면 더욱 빛을 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지켜보았기에 바라는 바가 더 큰지도 모르겠다.
2017년도 치러진 시흥의 3대축제를 보면서 축제의 형식에 맞게 비슷한듯하면서도 각 축제마다 특성화 되어 있었다.
예산과 축제의 규모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예산은 연성문화제 4천500만원, 물왕예술제 1억5천만원, 시흥갯골축제는 도비포함 6억2천6백만원이었다.
연성문화제는 지역의 숨겨졌던 역사적인 인물을 발굴 조명하고 시흥시 무형문화재와 국가 중요무형무화재의 공연 등을 함으로써 시선을 확장시키고 우리 시흥의 문화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왕예술제는 시흥예술인들의 자긍심과 자존감으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제에 맞게 국악, 무용, 문인, 미술, 사진가, 연예예술인, 음악, 건축가협회가 각자의 영역에서 참여하고 협회 외의 공연자들과의 합동 공연을 통해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공연을 이끌어 가고 새로운 활력을 얻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흥갯골축제는 차별화된 축제를 꿈꾸며 출발하여 ‘갯골의 바람... 그대로의 사랑’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하여 12년 만에 경기도 10대 축제평가에서 5위에 선정되고 문화체육관광부 선정하는 2017년 문화광광 축제로 발전되었다.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최찬희(1962년생)(사) 한국예총 시흥예총 지부장은 시흥갯골축제위원장과 물왕예술제 위원장을 맡았다. 최찬희 위원장은“시흥갯골축제는 사무국에서 기획과 준비를 하고 추진위원회를 통해 추인을 받는다. 시흥갯골축제는 자연생태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차 없는 축제, 쓰레기 없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시흥갯골축제에 들어온 외부 인력은 기획력과 조직력이 탁월한 장점을 가졌다.”고 했다. 물왕예술제는 “동적인 공연 등은 활성화가 되었고 확대할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개인예술을 하는 분들은 그 특성상 활동이 적다.”며 “1인 예술을 하는 지역예술인들이 기획력을 가지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원철(1956년생) 시흥문화원장은 제26회 연성문화제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정원철 위원장은 향후 연성문화제 추진 방향으로 “지역 문화 정체성 개발은 지역의 몫이며 주민이 중심이 되는 축제를 지향하고 시흥의 인물이나 문화재의 특징을 정확하게 인식한 지역 문화 활동가의 스토리텔링 참여가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강희맹, 정제두 선생 등 역사적 인물들을 발굴 조명하여 지역의 전통 정신과 지역 문화예술을 진작시키고 현대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다.”며 ‘이를 통해 연성문화제를 구심점으로 하는 지역문화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축제시흥시의 3대 축제를 기록하면서 시에서 예산지원을 하면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으로 자주 거론 되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다. 예산지원을 하는 시보다 행사를 주관하는 민간단체가 더 전문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온전히 즐기는 것이다. 거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잔잔한 감동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오방대의 과하게 화려한 동작과 함께 보이던 슬픈 가면의 기억, 유명가수의 공연보다 나풀거리는 천 사이를 뛰어다니던 소녀의 모습, 무심한 그림 한 장, 마을을 적시던 시 한 줄,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사진을 찍던 사진 담당자 등 시흥의 3대 축제를 기록하면서 느꼈던 그 약한듯하면서 묵직하게 다가서던 그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기를 바랐다.
2017년 예술시흥 19호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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