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흥시청에서 새로이 개통한 동서로를 따라 안양 및 목감 방향의 동쪽으로 차를 몰아 둔대고가, 범배터널을 지나 약 4km에 지점에 이르면 “야!”라는 탄성과 함께 가슴이 탁 트일 것 같은 통쾌함을 주는 경관이 있다. 바로 시흥9경의 하나인 시흥의 명소 [물왕저수지]이다. 이 저수지와 고락을 함께한 마을이 [물왕동]이다.
■ 지명 유래
[물왕동]은 [안말][장자골][능골]의 3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다. [안말]은 “안쪽에 있는 마을”이요, [장자골]은 “장자(부자)가 예전에 살았던 마을”이요, [능골]은 “큰 능을 쓰려고 했던 마을”에서 유래한다. 이 3개의 부락을 총칭하여 현재 사용되는 [물왕동-物旺洞]이라는 마을명은 한자로 <만물 물-物, 왕성할 왕-旺, 마을 동-洞>으로 <만물이 왕성한 마을>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옛 문헌이나 비문을 볼 것 같으면, [물왕동-物旺洞]이라는 명칭이외에 [물항동-勿項洞][항동-港洞][수다동-水多洞][수동-水洞]이라고도 기록되어있다.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마을의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물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물이 좋은 마을]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일까? 이 마을에 저수지가 축조되었으니...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하다. 결국 [물왕동-物旺洞]마을은 지명이나 지형으로 보건대, 물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웬 흥부저수지?
맑은 가을 하늘과 잘 어우러진 저수지에는 한가위 연휴에 삼삼오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사람들은 모두 [물왕저수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공식 이름은 [물왕저수지]가 아니라 [흥부저수지]이다. 1945년 준공 당시에 저수지 물의 혜택을 받는 지역이 행정구역상 시흥군(지금의 시흥시 연성동)과 부천군(지금의 시흥시 매화동)지역이어서 [시흥]에서 [흥]을, [부천]에서 [부]를 취하여 [흥부저수지-興富貯水池]라고 한 것이다.
저수지이다 보니 낚시꾼이 많이 찾는 곳인데, 이승만 대통령도 낚시를 하러 올 정도였다. 마을에서 70년대 양식계를 조직하여 치어를 방류하는 등 저수지 관리를 잘 해서 인근 지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와서 상당한 액수의 수익을 올려 마을 공동기금으로 지원도 했다.
봄이면 아낙들은 맑은 저수지 물에 자라는 [말침]이라는 수중식물을 채취하여 말려서 나물로 먹기도 하고, 장아찌로 먹기도 했다. 정금학 할머니(78세)는 “애덜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면 그만이었지”라고 말씀하신다. 여름이면 미역 감고, 가을이면 김장 배추를 저수지 물에 씻어서 절였다. 겨울에는 물왕동 뿐 만아니라 산현동 등 저수지 주변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썰매타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을 신나게 했다. 아스라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 농토가 사라지다
40년대 초중반 저수지 공사가 시작됐다. 마을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마을 앞의 문전옥답이 모두 수몰되었다. 몇 푼 안되는 보상금을 받았다. 농토가 없어지다 보니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김흥수
할아버지(73세)는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인데 농토까지 없어져 정말 힘들었어”라고 하신다. 마을 분들은 쥐꼬리만한 보상금에 돈을 보태어 저수지 아래에 농토를 겨우 마련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물 걱정 안하고 논농사를 짓게 되어 무엇보다도 안심이 되었다. 두레도 꾸며 논에서 김매기도 하였다. 밭에는 보리, 콩을 심었다. 여느 마을처럼 포도나 복숭아 따위의 과수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축산을 크게 하였다. 젖소를 길러 수익을 올리면서 형편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 까페가 나타나다
저수지 주변 마을이다 보니 경치가 뛰어났다. 병풍처럼 <운흥산><관모산><안살미> 봉우리가 저수지를 감싸고돌면서 말 그
대로 산수(山水)가 어우러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은 저수지의 전망 좋은 곳에 까페를 비롯한 음식점을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각종 한식당과 라이브 까페가 성행하여 낚시외에 낭만과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밤이면 화려한 불빛이 저수지 수면에 반사되어 더욱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을 사람들 중에도 요식업을 경영하시는 분도 생겼다. 외지인들이 마을에 많이 정착한 반면에 마을 분들은 땅을 팔고 외지로 나가면서 현재 [안말] 부락에는 토박이로는 2집만이 살고 있는 상황으로 변모되었다.
■ 살아온 이야기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이 [물왕동]에 오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비포장도로를 평평하게 닦는 일을 했다. 길옆의 재래식 뒷간도 미관상 좋지 않아 모두 헐었다.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끼리 더위를 피해 한바탕 잔치를 했다. 마을 맞은 편 저수지 너머로 속칭 진로별장이 있다. 그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여름의 더위를 식혔다. 진로 별장에서 장소와 술은 공짜로 제공했다고 한다.
음력 10월이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 고사를 지냈다. [안말]의 도당할아버지 나무와 도당할머니 나무 밑에 술․과일․떡 등 음식을 올렸다. 고사를 마치고는 마을 전체 사람들이 모여 음복을 하였다.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두레를 파작하거나 마을의 대동행사를 할 때면 [안말]의 은행나무와 [능골]의 솔밭을 찾았다.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있지만 옛 모습은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 가을 풍경
얼마 전에 개통한 4차선의 동서로가 마을과 저수지 사이로 내달려 간다.
[안말]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화려하게 장식한 음식점들과 광고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콩 깨 무우 배추 고추를 심은 밭들이 녹색으로 색칠을 한다. 재래식 가옥은 거의 없었다.
[장자골]에 왔다. 옛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하다. 빛바랜 가게들이 눈에 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님들로 붐볐던 음식점들이 임대를 한다는 내용의 종이를 붙여 놓았다. 교통로가 바뀌면서 손님도 줄어 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능골]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얀 외벽
을 한 [물왕교회]가 마을 입구에 있다. 1930년대에 설립된 7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다. 마을길을 따라 있던 전통가옥들은 현대식 건물로 산뜻하게 바뀌어 있었다.
젖소 목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음메~하고 우는 젖소의 울음소리도 이젠 들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저수지 주변에는 차들이 많다. 그리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저수지 풍경을 즐기려는 연인들도 많다. 앞으로 [물왕동]의 가을 풍경은 어떻게 변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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