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게 사람이제

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상애 | 기사입력 2023/10/14 [07:30]

긍게 사람이제

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상애 | 입력 : 2023/10/14 [07:30]

▲ 도서 『아버지의 해방 일지』     ©시흥장수신문

아버지는 20년 수감생활을 하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빨치산 활동 때문에 환영을 받지 못했다. 작은아버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 촉망받던 사촌 오빠는 신원 조회에 걸려 육사에 입학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원망의 대상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조문객을 통해 생전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종교 사상 노동 비전향장기수 민중 죽음에 대해 재미있게 잘 풀어내 가독성이 있다. 웃으며 읽고 나서 다양한 주제로 토의하기 좋은 책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세대들에게도 그 시대를 살아낸 분들의 마음을 횡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론 우리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책이다. 작은 사건들 속에서 유머러스하게 드러나는 소시민성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삶과 이상은 괴리가 있다. 아버지가 종교에 빠진 조카에게 생각이란 월매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듯이 어쩜 아버지도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찬찬히 잘 생각했으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겐 사상보다 사람이 위에 있었으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는 문장을 꼽아본다.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사상은 안 통했어도 마음은 잘 맞아’, “민심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생각이란 것은 월매든지 바뀔 수 있니라. 긍게 니도 찬찬히 잘 생각해보그라말만 듣지 말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함시로 하나님 말고 니 머리로 잘 생각해보란 말이다. 그러라고 사램머리가 달레 있는 것일게.”, “긍게 사램이제.”이다.

 

우리는 빠르게 빠르게 뭔가 이루려 하다 보니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 삶에 지쳐서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에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쉬운 답을 찾으려 한다. 뭔가를 검색하더라도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을 클릭하게 된다. 딸이 아버지에게 매일 싸우는 친구와 왜 맨날 노냐는 물음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했던 아버지.

 

이쪽 저쪽으로 편을 가르고 싸움을 하는 건 모두 잘 살기 위한 것이다. 방법만 다를 뿐. 선조들이 생각이 달라 끊임없이 논쟁하고 다퉜던 이유는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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