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서
김민지(김순기) | 입력 : 2020/06/10 [20:13]
-느티나무 아래서-
40년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다.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다. 서로 큰일 때만 잠깐 보다가 마음먹고 고향 여행을 했다.
우리가 만나서 제일 먼저 한 이야기는 성황당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 안부였다. 상수리나무는 진작에 잘려 나갔고, 내가 7년 전에 고향을 찾아갔을 때, 느티나무는 몸살을 앓는지 잎사귀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느티나무가 고사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문에 고사된 느티나무를 없애지 않고, 있던 자리에다 그대로 나 두었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었다. 추억에서만 웅장하던 느티나무를 떠 올렸고 이내 궁금증도 사그라들었다.
고향은 변했다. 법화산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은 없고,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가 대신하고 있다.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는 여기가 너네 집이니 우리 집 하면서 숨은 그림 찾기 놀이하는 듯하였다. 법화산만 변함없이 고향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느티나무를 찾아 나섰다. 법화산과 마을 앞으로 흐르던 개울을 기준점으로 놓고 찾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였다. 결국 느티나무를 찾지 못하였다. 가슴에 뭔가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흐르는 개울가를 산책길로 만들어 놓았다. 그 길을 따라서 청덕리를 한 바퀴 돌았다. 이 산책로가 미역도 감고 고기도 잡고 동네 부녀자들 빨래터였는데……
내 머릿속은 점심 먹고 산책을 하는데도 온통 느티나무의 안부가 궁금했다. 정말 없어진 것인가? 아님 우리가 찾지를 못하는 것인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카페로 향했다. 친구 다미네 집이 있었던 곳에는 카페촌이 생겼다. 카페로 가는 길에 우연히 되돌아본 곳에 나무가 언뜻 보였다. 저 나무가 혹시 우리가 찾는 느티나무인가 하는 의심을 안고 무작정 뛰었다. 맞다 맞아 우리가 찾는 느티나무다.
목이 메어왔다. 와락 느티나무를 끌어안았다. 느티나무가 쿵쾅거리면서 숨을 몰아쉬는 듯하였다. 내 숨소리에 내가 놀랐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고 여러 번을 반복했다. 다행이다. 잎사귀가 무성하면서 당당하게 위엄을 잃지 않았다. 고사목이 아닌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등을 기대었다. 내가 다시 고향을 찾아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들었다.
유년의 느티나무는 범접할 수 없는 크기였다. 친구 세 명이 함께 손을 잡아야 껴안을 수 있었다. 우리 마을을 오가는 버스 종점이 느티나무 자리까지였다. 그래서 늘 느티나무 주위에는 사람이 많았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기다란 나무 의자가 있었고. 새끼줄 몇 겹을 꼽아서 나무에 매달아 놓은 그네도 있었다. 항상 느티나무 곁에는 아이들이 있었고, 새들이 지저였다. 직접 농사지은 참외 수박 옥수수 등도 나누어 먹었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았던 느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었다.
카페에서 쉼을 즐겼다. 홀가분한 기분이어서 달달한 카페모카가 당겼다. 친구들과 다음에는 고향을 지키고 있는 법화산을 오르기로 했다. 아차, 느티나무 아래에서 풋풋했던 내 첫 감정의 이야기는 비밀입니다. 느티나무님.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