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익는 밤, 시를 읽는 밤

-김석일, 박설희, 권오영, 임경묵 시인과 함께 하는 시 콘서트

최분임 | 기사입력 2019/02/01 [14:11]

시가 익는 밤, 시를 읽는 밤

-김석일, 박설희, 권오영, 임경묵 시인과 함께 하는 시 콘서트

최분임 | 입력 : 2019/02/01 [14:11]

 

   

 

▲   서아책방

 

 

2019125일 저녁 7시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서아책방(대표 최서아)에서 시가 익는 밤, 시를 읽는 밤시 콘서트(크로스 낭독회)가 있었다. 김석일 시인의 <연화장 손님들> 임경묵 시인의<체 게바라 치킨집> 박설희 시인의<꽃은 바퀴다> 권오영 시인의<너무 빠른 질문>이 자리를 함께 했다.

 

▲  서아책방, 시 콘서트에 참여한 시인들의 시집   © 최영숙



 

미리 도착한 서아책방. 작은 책방 안 테이블 위에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5(최두석 시인의 <숨살이꽃> 포함) 시인들의 책들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시인들의 얼굴 사진과 책 사진을 붙인 와인병들이 손님들을 맞았다. 그 앞 테이블에는 와인과 함께 참치크래커 까나페, 오리고기 샐러드, 어포 등이 준비돼 있었는데 서아책방 주인장이 이 행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 이은선 소설가  ©최영숙

 

 

시간이 되자 최근에 소설집 <유빙의 숲>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은선 소설가가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서아책방과의 인연이 참 값지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이곳에서 최두석 시인의 시집 <숨살이꽃>을 가지고 숨살이꽃에게 길을 묻다행사를 진행했었는데 이번이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그 시집이 줄기를 뻗어 다른 시집들을 거두게 된, 넌출넌출 딸려 나오는 감자처럼 무려 네 권의 시집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숨살이꽃에게 길을 물었는데 네 권의 시집이 답을 돌려주었어요. 사람과 문장, 시와 삶을 이야기 해보는 밤입니다. 저는 미녀소설가 이은선입니다

 

 

▲ 최두석 시인   © 최영숙

 

 

이은선 사회자의 인사말에 긴장된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지자 시인들의 스승인 최두석 시인이 여는 말로 행사에 참여한 시인들을 격려했다. “반갑습니다. 이 행사로 인해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4명의 시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4권의 시집을 음미하고 감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연을 갖고 동행하게 되어 기쁘고 4명의 시인들은 각자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고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을 낸 김석일 시인은 삶을 살아온 깊이나 폭이 넓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경험을 가지고 시를 쓰고 있습니다. 박설희 시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섬세한 상상력이 각별합니다. 등단할 때 스승이라 발언권을 자제한 미안함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두 번째 시집입니다. 또한 첫시집을 낸 권오영 시인은 시 쓰는 방식이 남들과는 다릅니다. 언어의 충돌 즉, 나 같은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를 밀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또 임경묵 시인은 보는 시선이 깊습니다. 삶의 뒷골목, 삶이 원천적으로 지니는 슬픔 같은 걸 눙치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런 네 분들을 배우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오늘 시의 속살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왼쪽부터 박설희, 김석일, 임경묵, 권오영 시인   © 최영숙


 

이은선 사회자는 숨살이꽃의 시인 최두석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이 행사가 조금 더 풍성한 꽃길 위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첫 번째 코너는 김석일 시인과 박설희 시인입니다. 우선 김석일 선생님 벌써 세 번째 시집인데 놀라운 것이 2006년 등단이세요. 굉장히 성실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에게 시란 무엇이고 시를 쓰게 된 동기, 세 번째 시집을 상재한 느낌이 어떠신지 여쭤 봐도 될까요?” 라고 물었다.

 

 

▲  김석일 시인  © 최영숙



6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한 김석일 시인은 내게 시란 타인에게 말 걸기, 타인에게서 말 끌어내기이다. 또한 존재의 가치 중에 하나이며 타자와 소통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언젠가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수술실에서 칼 긋는 소리를 들으면서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모든 게 없어지고 오로지 나 자신만 남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과 잊고 살았는데 학교 다닐 때 백일장에서 상 받은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 후에 한신대에 가게 됐고 시를 쓰게 됐다.”라며 이런 자리가 어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두석 스승님을 모시고 이런 자리를 함께 해서 즐겁고 감사하다고 했다. 시집은 낼 때마다 아쉽고 많이 부족한데 서둘렀다는 생각이라면서 여러 권의 시집을 냈지만 자신의 시가 변한 건 없다고도 했다. 시에 등장하는 이들이 기본적으로 약자인 사람들과 아웃사이더들이며 이야기체를 즐겨 쓴다고도 했다. 사족처럼 시의 마지막 문장에서 반전을 노린다며 쑥스러워했다.

 

 

▲  김석일 시인의 시집 표지  ©



 

2011년에 펴낸 첫 시집 <늙은 아들>은 약자에 대한 부채의식이 목에 걸려 있어서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시를 썼다고 했다 미군부대 근처에 사는 사람들, 가정이 파괴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들이 빛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했다.

2014년에 펴낸 <평택항>, 2018년 세 번째 시집 <연화장 손님들>까지 시가 샘솟는 우물이 시인의 몸 안에 들어 있는 느낌인데 시의 소재를 어디서 찾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내 시는 레시피가 없다. 날것이다. 현실과 부딪히며 시의 소재를 찾는다.”라고 대답에 사회자는 그 삶이 축적되고 축적되어서 돌아온 우주가 시인의 시가 아닌가 싶다.” 는 말을 덧붙였다. 뒤이어 박설희 시인이 김석일 시인의 시 모텔 연화장을 낭송했다.

 

 

모텔 연화장 / 김석일

 

남루한 삶의 거적을 벗어버리고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강 건너 저쪽 세상으로 가는 길목 한 쪽

사시사철 햇살이 따사로울 것만 같은

풍광 고운 골짜기에 자리잡은 그곳

모텔 연 화 장 *

 

참 부질없던 이승의 마지막 밤과

염라부閻羅府 첫날밤이 공존하는 곳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생쥐조차 시커먼 그곳엔

언제나 까마귀 형상의 그림자가 어슬렁대고

한결 같은 블랙앤화이트복장의 사람들은

애써 죽음을 타인의 몫으로 돌리며

국화 향기 속에서 독한 소주를 마시고 또 마신다

 

가는 이와 남는 자, 누구의 슬픔이 더 클까

빈약한 추론의 귀착점은 존재하지 않고

조화의 수량과 조의금 액수를 가늠하며

남은 자들이 슬픔을 빌미로 치르는 의식의 전당

 

이내 떠나는 아침을 밝히는 태양을 향해

불뚝 선 직립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화장장 굵고 높다란 기둥 언저리엔

하얀 혼백魂魄이 어지러이 이별을 고하고

 

제 설움에 복받쳐 가슴치며 오열하는

남은 자들의 절도 없는 어색한 퍼포먼스가

멋쩍게 이별의 끄트머리를 장식하면

떠나는 자의 가슴 후비는 속울음은

불구덩이 언저리에 진한 흔적으로 남는다

 

 

* 수원시 공용 장례식장 겸 화장장.

 

 

뒤이어 박설희 시인의 미니 문학강좌는 김석일 시인의 크로스낭독으로 문을 열었다.

      

사는 동안 / 박설희

 

강원도 오지 기린면의 사는동안 부동산

집을 사는 동안

그 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당신은 제 고객입니다

 

책을 사고 컴퓨터를 사고 여행을 사고

사고 사고 또 사는 동안

난 살아 있다

 

사는동안 애인

사는동안 죽음

 

그러나

부동산을 사는 동안

애인을 사는 동안

죽음을 사는 동안

 

빽빽이 자라는 꽃들의 불안

내가 사지도 팔지도 못하는

당신의 얼룩지고 금간 얼굴

메마른 강으로 남은 내 손

 

그럼에도 끝까지 달려가 보는

사는 동안

 

 

김석일 시인은 이 시를 고른 게 내가 쓴 시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라며 공감한 느낌을 우회적으로 말했다. 박설희 시인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시를 짓게 됐다, 라며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를 이야기했다.

 

 

▲  박설희 시인의 시집 표지  ©



사회자가 박설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꽃은 바퀴다>를 읽으면서 저는 시인이 지나간 자리마다 시인의 발자국이 찍힌 자리마다 꽃잎을 찍고 있는 듯한, 압화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표제작을 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라는 질문을 던졌다. 박설희 시인은 사는 동안 부동산을 많이 드나들었다. 내 시는 주로 낯선 것에서 시작한다. 거의 9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는데 재미있게 썼다. 내 시집을 내가 잘 못 본다. 부끄러워서...” 라며 좀 전에 와인을 한 잔 했다며 가볍게 생각하고 이 자리에 앉았는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막막한 느낌이라고 했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시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한다. 작년과 올해 힘들었다. 시는 뭐지, 하면서 떠오른 단어가 한 음절 단어였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시는 이런 거야, 라고 잡았다 하는 순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시를 쓸 수 있을까 막막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시는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삶의 여백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2~30대에는 삶이 뭐지, 하고 그 의미를 찾았는데...잘 모르겠다. 시가 뭐냐고 물으면 막막하고 매번 그 대답이 다르다. 그런데 내가 힘들 때 견디게 해 준 건 시였다. 다른 이들의 시를 읽으며 견뎠다. 힘드니까 내 시를 쓸 수는 없었다. 시인은 현업이라고 생각한다. 전 시인이 아니라 시인이다. 시를 못 쓰고 있어도 시인이다. 시가 잘 안 써질 땐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앞으로도 이 길을 꾸준히 갈 것 같다. 남들이 봐 주든 안 봐 주든 뚜벅뚜벅 갈 것 같다. 시의 에너지는 주위 사람들과 부대끼며 얻는다. 노인 복지관 같은 곳에서 말씀도 듣고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다.” 라며 시에 대한 정의와 근황과 앞으로의 바람을 털어놓았다.

 

 

▲ 박설희 시인    © 최영숙



사회자가 시집의 가장 첫 번째 시가 먼나무예요. 아주 먼 나라의 고원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나무가 상상이 되었습니다. 이 시를 가장 먼저 목차에 올린 이유가 궁금합니다.”라고 묻자 박설희 시인은 국립수목원에 가서 만난 먼나무다. 먼나무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나무 이름이다. 나무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나,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후로 마음속에 먼나무가 있다. 아픔이 잘 전해지는 나무라고 생각된다.”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이은선 사회자가 다시 최두석 선생님 시에는 꽃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알기로 박설희 시인께서도 식물에 관한 조예가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에게 최두석 시인은 이 꽃이다, 또는 이 나무다? 하는 것이 있을까요?” 묻자 박설희 시인은 선생님은 동네 입구 정자나무, 수령이나 그늘을 짐작할 수 없는 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느껴진다.” 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시는, 자신에게 어떤 꽃 혹은 나무로 비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누군가 자신을 흰 목백일홍을 닮았다고 했다며 하얗고 깨끗하지만 고집이 센 편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뒤이어 권오영 시인의 미니 문학강좌가 이어졌다. 사회자가 시인에게 시집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움직이는 시간,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임경묵 시인이 권오영 시인의 시 뢴트겐의 정원을 낭송했다.

 

▲  권오영 시인 시집 표지 ©



 

뢴트겐의 정원 /권오영

 

부서지고 금 간 곳을 들여다보며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살과 뼈, 그 사이로 여전히 흐르는 피는

X선 사진 속에서 어둡다

어둠 속에서 뼈의 줄기들이 빛난다

빛나는 것들이 환하게 길을 열어 보인다

부러진 뼈마디, 철심 박힌 척추,

피맺힌 갈비뼈에서 자라는 꽃들

시속 백사십 킬로의 자동차에서 튕겨져 나온

몸의 흔적은 무성했다

살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잎사귀들

진흙 속을 헤집고 나온 푸른 꽃들

살갗을 뚫고 날아갈 것만 같은 은빛 나비들

잠에서 깨어나는 애벌레들, 눈이 부시게

오랫동안 몸속에 불이 켜져 있다

부러진 뼈마디에 뿌린 씨앗들이 꽃을 피운다

살아 있는 시체의 얼굴을 한

핏빛 냄새를 풍기는 붉은 정원

형광 불빛 아래서 살아나는 낮은 신음들을

하나씩 벽에 건다

벽에 걸린 채 살아나는 신음들을 만지며

달아난 세계를 본다

 

 

권오영 시인은 임경묵 시인의 낭독을 듣고 타인이 읽어준 시를 들으니 내 안에 나비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첫 시집의 느낌은 쓸쓸했다. 사람들이 너무 빠르다. 비루한 삶을 제 방식으로 타자화된 나를 건조하게 그렸지만 거기에는 피도 들어 있고 꽃도 들어 있고 눈물, , 가시도 들어 있다. 시는 네가 알아듣게 써줄게, 가 아니다. 시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언어와 다르다고 해서, 어렵고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시가 아니라는 구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과감하게 써야 한다.”라는 말로 스스로의 시 쓰기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  권오영 시인  © 최영숙



사회자가 임경묵 시인에게 이 시를 소개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오독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권오영 시인의 시 뢴트겐의 정원에서 부서지고 금간 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는 구절이 권오영 시인의 시 쓰기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세계의 미세한 고통, 그것들의 신음을 만지기 위해 불을 켜고 뼈마디에 씨를 뿌리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설명을 했다.

사회자가 권오영 시인에게 던진 유독 마음에 남는 나의 시는?”라는 질문에는 아버지라는 시를 썼다. 아버지가 군인이셨다. 시를 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아버지의 몸 문드러진 부분까지 썼다는 의미다.”라고 대답했다.

사회자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돼 울컥하신 거 아닌가, 싶다며 준비 중인 두 번째 시집이 이번 시집과의 차이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달라지지 않았다. 표현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라는 답을 했다. 요즘 근황에 대해 묻자 신나게 놀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 최영숙

 

 

이어서 임경묵 시인의 문학토크가 이어졌다. 사회자가 임경묵 시인에게 시란 무엇이냐, 라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등단하고 10년 만에 나온 첫 시집이라 감회가 더 깊다. 등단할 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가 올해 고3이 되었으니까.” 라면서 자신이 쓴 시가 독자들에게도 선물이었으면 좋겠고, 시를 알려주는 대상과 좀 더 오래 좀 더 자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 대상이 언젠가 자신에게 시의 말을 걸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  임경묵 시인의 시집 표지 ©



 

곁에 앉은 권오영 시인은 임경묵 시인을 가리켜 시가 너무 좋고 사람이 좋아 늘 감동한다는 말을 곁들였다. 권오영 시인이 선택해 낭독한 임경묵 시인의 시는 김쿼파 씨의 메일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였다. 이 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시인은 이 시가 좋아서 울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시를 좋다고 한 이유는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사이, 그 중간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시는 억지로 가져다 붙이지 말아야 하며 모든 세포가 다 살아 느낄 수 있는 최적화된 표현이 시라는 말을 덧붙였다.

 

 

김쿼파 씨의 메일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 임경묵

   

김쿼파 씨,

외롭고 쓸쓸한 저에게 정기적으로 메일을 보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당신의 메일을 읽을 수가 없군요, 아니, 솔직히 읽을 용기가 나질 않아요. 당신의 메일은 스팸 메일함에서 오늘도 이렇게 나의 클릭을 기다리는데 말이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김쿼파 씨, 혹시 제가 아는 분인가요? 저도 용기가 나질 않아서 한때 닉네임으로 첫사랑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거든요, 물론 답장을 받지 못했지만..... 어떤 날은 박키고’, 어떤 날은 최스란’, 어떤 날은 목풀리인 당신 이름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내 첫사랑을 닮았어요. FM93.1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폴란드 가수의 우울한 노래를 듣는 저녁, 문득 내 첫사랑은 동유럽 끝없는 초원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 당신이 보낸 메일에 커서를 올려놓고 클릭을 망설입니다. 이미지만으로 구성되었다는 메일 미리보기 정보는 당신의 존재와 당신이 계신 곳을 더욱 궁금하게 합니다. 당신이 만약 내 첫사랑이라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사랑하고, 집시처럼 세상의 모든 나라를 떠돌기 좋아해서 세상의 모든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나에게 메일을 보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이 보낸 메일은 클릭할 수가 없군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폴란드 가수의 우울한 노래를 듣는 저녁, 오늘은 우박이 내려서 조금 서둘러 퇴근하기로 했어요. 김쿼파 씨, 당신이 계신 곳도 10월에 단풍이 붉고, 가끔 우박이 내리나요?

 

혹시, ......옥분이 아니니?

 

 

이은선 사회자가 스팸메일에서 사람을 유추해서 시를 썼네요, 라고 묻자 임경묵 시인은 이 시를 선택해 읽을 줄 몰랐다. 이메일에 재미있는 이름으로 온 메일이 몇 백 개가 있었다. 그걸 보고 쓴 시다. 그 메일을 열어보지는 않았다. 메일을 열었다면 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열어보지 않아서 상상을 하게 됐다. 그 상상력이 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라며 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은선 사회자는 등단 후 10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 제목을 고르고 골랐을 텐데 왜 하필 체 게바라 치킨집입니까?” 묻자 첫 시집을 내며 겨우 시의 옷을 입었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시집 제목은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치킨 집이다. 치킨 집 이름이 체 게바라가 아니고 치킨 집 화장실 입구에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는데 그게 시의 제목이 되었다. 또한 시집의 제목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현재, 최근에 봤던 골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건 그 집이 없어졌다. 원래는 골목의 감정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이미 무슨무슨 감정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시집이 많다고 말씀하셔서 골목의 한 소속인 체 게바라 치킨집으로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 라고 설명했다.

 

 

 

 

▲ 임경묵 시인    © 최영숙



시를 언제부터 쓰게 됐냐는 질문에는 처음 시를 알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때 첫사랑(국어국문학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시를 좋아하는 첫사랑 때문에 시를 읽을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그 당시 해태껌 중에 이란 껌이 있었는데 그 껌종이 뒷면이 글쓰기가 좋아서 거기다 좋은 시 한 구절을 필사해 다시 껌을 싼 다음 사물함에 넣어두곤 했다고 했다. 그 여학생이 껌을 씹고 있으면 아, 내 메모를 읽었구나 생각하며 이틀에 한 번씩 정성을 들였으나 끝내 헤어졌다고 했다. 항상 빛나는 구절만 보여주는 자신이 지루했던 모양이라며 빛나는 문장만을 갖고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계기가 되어 학교를 졸업하고도 도서관을 드나들며 시를 읽었다고 했다. 2005년인가 고3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매주 좋은 시 한편을 게시판에 게시하였다고 했다. 어느 날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를 게시했는데 한 여학생이 훌쩍훌쩍 울자 너도 나도 따라 우는 아이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그때 시가 도대체 이놈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싶었고 그게 시인에게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고 했다. 시는 그렇게 선물처럼 왔고 뜻밖이든 예상을 했든 선물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사회자가 임경묵 시인을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내와 시라는 대답이 나오자 조금은 엄숙했던 분위기가 깨지며 감탄과 존경의 웃음이 터졌다. 사회자가 다시 골목이란? 라고 묻자 시의 고향, 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시인에게 첫 번째 골목은 어디냐고 묻자 평택 중앙초등학교 앞 골목이다. 언젠가 사십년 만에 다시 그 골목을 찾아가 봤다. 황토로 된 그 골목, 소와 말을 키우고 우물이 있고 미군부대와 가까워 기지촌에 다니는 누나들이 있는 그 골목이다. 그런데 그 골목의 집들이 그대로 있었다. 40년 동안 건드리지 않은 그 골목이 내 시의 고향이다.” 라며 골목과 그 골목에 소속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     © 최영숙



시인들의 미니 문학강좌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은선 사회자는 시와 시인, 시인과 시를 둘러싼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조금 설레기도 하고 서툴기도 하고 또 시인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숨살이꽃, 감자 줄기를 잡아당겼는데 네 개의 감자(시집)가 각기 다른 길을 열어 보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오늘 어떠셨는지요?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네 권의 시집이, 네 분의 시인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라며 마지막으로 시인들에게 이 행사를 마치는 소회를 물었다.

임경묵 시인은 "계속 쓸 것이다. 첫 시집이 나오면서 시를 계속 쓸 분명한 이유가 생겼다. 시를 쓰는 것을 참지 못할 것 같다." 며 시에 대한, 시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권오영 시인은 "왔던 것처럼 갈 것이다. 한신대 대학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배웠으니 앞으로도 존재에 대한 사유,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잘 쓸 것이다.” 라며 스스로를 토닥이듯 앞날을 약속했다. 김석일 시인은 스승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모든 선생님들의 위로와 격려에 용기를 내서 시를 써나갈 것이다.” 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박설희 시인은 "첫 번째 시집보다 두 번째 시집에서 더 자유로워졌는데 다음 시집에서는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닫는 말에서 최두석 시인은 서아책방에서 좋은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잘 들었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좋은 기회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오늘 오신 모든 분들에게도 시를 만나는, 느끼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라며 제자들, 그 자리를 함께 한 이들에게 마음을 담은 인사를 했다.

 

시가 익고 시인이 익는 밤, 시를 읽고 시인을 읽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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