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언어극 <성가족>을 달빛 아래서 보다 © 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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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밤 8시 보름달이 떴다. 전통한옥 영모재(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에서 극단 기린의 비언어극 <성聖가족>을 보았다. 유서 깊은 영모재는 보름달이 교교히 비추는 세트장이 되었다. 마루와 안방, 부엌, 마당, 뒤란까지 자연스러운 무대가 되었다. 영모재의 규모와 구조는 다르지만 어린 날, 우리들이 놀았던 그 공간의 느낌을 그대로 알 수 있었다.
가을밤은 서늘했다. 극단 기린에서 핫백과 담요 등을 제공해주었다. 동네 이웃이나 친척들을 초대해서 공연 하는 듯 모습들이 다정했다. 어린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마당가에 둘러 앉아 공연을 보는 일은 색달랐다.
말이 없음으로 더욱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성聖가족>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란 존재는 당연하고 심심한 듯 보여도 위대하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한 순간에 어린이로 만들었다.
배우과 스탭들이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세요. 떡 드세요."하면서 떡과 따뜻한 차를 관객들에게 나눠주었다. 관객이 함께 참여하고 마치 연극이 시작되던 그 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참으로 세세하고 다정한 배려였다. 어린 날, 할머니나 아버지 생신이 돌아오면 온 동네를 다니면서 "아버지 생신이세요. 아침진지들 잡수세요."하고 심부름했던, 가을 이맘 때 쯤 엄마가 추수를 마치고 고사를 드리고 시루떡을 머리에 이고 동네를 돌면 언니와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걷던, 달과 별들은 머리 위에서 빛나던 그 시절이, 또 떡을 마지막으로 전해주던 외딴 집은 가는 길에 작은 연못이 있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던, 그 순간으로, 그 장소로, 추억이 한 순간에 떠올랐다. 그러나 엄마도, 언니도 이제는 곁에 안계시다는 것도...
돌아가신 할머니와 엄마의 다디미 소리는 경쾌했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듯히 마루에서 두 분이 두드리던 소리가 한 순간에 들어왔다. 추억의 소환이었다
배우들의 혼연의 연기를 보는 것도 좋았다.
친정나들이를 온 딸이 돌아갈 때 짐짓 모른척 다른 곳은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당시의 아버지의 상을 보는 듯했다.
공연을 보면서 사진을 담다 보면 제대로 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당시 스치듯 지나쳤던 장면들에서 순간 멈춤을 한다. 이 장면이 그랬다. 딸이 대문 밖을 나간 뒤에야 나와서 가는 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이 아버지를 보면서, 결혼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어쩌면, 막내딸인 내가 친정에 갔다 돌아 갈 때 우리 아버지가 짓는 표정일 듯했다. "제 설움에 운다."고 이제는 오래도록 잊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야말로 훅, 들어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났다.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 할머니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다 © 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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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과 작별하는 장면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가족들에게 인사를 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일을 계속한다. 그렇다. 삶은 그렇게 무심한듯 진중하게 계속된다. 나 또한 할머니, 아버지, 엄마, 언니, 조카가 떠났다. 그 뒤에도 남겨진 나와 가족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은 이어졌다. 나 떠난 뒤에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지극히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가족들이 각자 그리운 이름들을 불렀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 등 나도 가만히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 보았다. 엄마, 언니, 아버지, 아버님, 할머니, 어머니, 명희야, 명숙아, 벧엘아,.. 나중에 부른 이름들 순서를 보고 풋 웃음이 나왔다. 정으로 가네... 싶었기 때문이다.
단체사진을 담았다. 달빛에 참 따뜻한 공연을 해준 배우들이 감사했다. 또한 이상범 극단기린 대표와 스탭분들에게도...
달빛 교교한 밤, 참으로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28일 일요일까지 달빛공연을 한다. 시간이 허락되면 다시 한 번 추억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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