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입하

2018년 5월5일 바야흐로 김매기철 立夏입하

느림 | 기사입력 2018/05/21 [02:02]

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입하

2018년 5월5일 바야흐로 김매기철 立夏입하

느림 | 입력 : 2018/05/21 [02:02]

201855일 바야흐로 김매기철 立夏입하

 

양력 오월 초순에 들었으며, 이십사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다. 여름의 기운이 일어선다는 뜻이다. 확실히 일교차가 많이 줄었다...고 느끼는 중에, 주초에 돌풍이 불더니 갑자기 기온이 확 떨어졌다. 새벽녘엔 결국 아직 빨지 않고 걸어둔 겨울코트를 몸에 두르고 밖으로 나가야했다. 다 선견지명을 겸비한 게으름 덕분이다.

 

게으름이 덕만 있으랴.

때 아닌 잦은 비, 땃땃한 날씨로 발동걸린 가족나들이, 밀린 일에 스트레스를 풀고자 손댔던 몇 잔의 알콜. 등 돌려 밭을 보니 들풀의 그 푸르름이란 속절없다. 참으로 농부의 얼굴을 낯 뜨겁게 달군다. 완두콩과 감자가 들풀들 속으로 사라질랑 말랑 하고 있다.

 

바쁠수록 돌아가는 이 애매한 버릇. 카메라와 커피를 둘러메고, 아니 커피 한잔과 카메라를 둘러메고 지는 꽃과 피는 꽃 사이를 산책하며, 시간을 느껴본다. 계절의 여왕, 입하의 얼굴을 마주하기엔 다락밭 만한 곳이 없다.

 

이제 땀 쩔쩔 나는 더운 날을 준비해야겠다. 비싼 챙모자도 하나 샀다. 챙모자가 그리 비싼지 몰랐다. 여름 몸빼 바지도 장만해야 하는데 마트 것은 비싸고, 시장 것은 짧고. 어디로 갈 것인가.

 

입하의 밭일과 살림

-장 가르기

-고추, 가지 등 열매채소 모종심기

-잎채소 수확하기

-풀매기 시작

-감자밭에 북주기, 웃거름 하기

 

김매기

바야흐로 농사의 가장 고된 일인 김매기 철이 왔다. 농사짓는 첫 해에는 온 동네 사람들의 놀림감이 됐었다. 밭을 지나면서 다들 풀 키워?”, 녹두밭을 매고 있으면 풀밭에 녹두 났네!”, “농사는 아무나 짓나?” 별별 놀림을 다 들었다. 오기가 생겨 새벽녘에 나가 풀을 몇 시간을 뽑고 점심이 돼서야 돌아오는데, 이번엔 동네사람들이 얼굴이 왜 그렇게 상했나, 보약 해먹어야겠다, 갑자기 늙었다 등등 별소리를 다 들었다. 지나갈 때 한 번씩 말 걸어 주시는 한 어르신은 내 모습이 짠했는지 밭에서 풀만 뽑지 말고 내일 동네 사람들이랑 꽃놀이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살짝 가고도 싶었는데, 아무래도 효도 관광인 것 같아 정중히 사양했다.

또 한 어르신은 지나가며 독백처럼 풀은 못 이겨.” 하신다.

 

▲     © 느림

 

처음엔 풀이 자라고 나서 풀 속에 파묻힌 작물을 구해내려니 한 시간을 풀을 매도 한 평을 나아가질 못 했다. 풀은 나기 전에 호미로 득득 긁어줘야 한다. 그래서 맨다고 표현한다. 그러면 막 싹을 틔운 풀씨들이 뒤집어 져서 한 동안 풀이 나지 않는다. 이미 난 풀을 뽑는 일과는 천지 차이다. 이 일을 제대로 해야할 때가 바로 이맘때다.

여름철에는 풀을 매고 돌아서면 등뒤에서 풀자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땡볕 아래 서너시간 풀밭에 앉아있어 봐야 이 말의 공포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가끔 뙤약볕에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시골노인들 소식을 뉴스에서 들으면 남 일 같지가 않다. 이쯤 되면 검은 비닐을 씌우지 않고 농사를 짓는 다락밭을 보고 바보 같은 짓이란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적당히 이해하고 살아가게 된다.

호미 끝이 무르도록 풀 좀 뽑아보고서야 이제 들풀의 위력을 조금 알았다할까. 쪼그리고 앉아 땡볕에서 작물과 풀을 구분해 내는 일을 하면서 관찰력도 많이 늘었다. 어떤 풀은 자라도 무서울 게 없지만, 바랭이 같은 풀은 자라도록 내버려두면 매우 곤란하다. 사이사이 적당히 풀을 키워야 작물의 생명력도 강해지고, 다양한 벌레들이 공존하며 병해충에 강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특히, 풀은 풋거름으로 쓰이니 퇴비자립을 선언한 소농으로서는 한 뿌리의 풀도 귀하게 모으고, 어떤 때에는 제법 키워서 뽑는 여유까지 생겼다. 퇴비통에 넣고, 고추밭에 덮고, 호박밭에에 덮어주면 드세게 자라는 풀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흙도 살고, 나도 살고, 작물도 사는 길, 당연히 쉽지 않다. 쉬운 길을 미덕으로 선택해오다 지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지 않았나. 우리 선택은 더 이상 좀 더 많은 이윤과 좀 더 편리한 방식이 기준이 되어선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매일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하며 뼈져리게 반성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꽃밭

 

▲     ©느림

 

▲     © 느림

 

몇 해 전에. 봄 무가 어떤 것인지 먹어보고자 처음으로 봄에 무씨를 심었는데, 이런! 무가 자라지도 않고, 어느 순간 꽃대가 쑤욱 올라와 버렸다. 먹지도 못하고 거름만 훔쳐 먹은 꼴인 무밭에 당황해서 어쩌지를 못하고 며칠 놔뒀더니 꽃이 피었다. 볼수록 아름다운 꽃이.

무슨 꽃을 좋아하냐고 누가 물으면 서슴없이 무꽃이라고 답하리라. 허긴 이제껏 좋아하는 꽃 하나 없이, 마른 정서로 살았던 것도 같다.

무꽃이 이리도 아름다웠나! 꽃 중의 꽃이다. 소박함이 극치일 때 오히려 그 아름다움도 극치이려나. 꽃잎도 적고, 색도 입다 말고, 크기도 작다. 어렸을 때 보던 엄마의 치맛자락 같다. 분홍색은 원래 가난한 집에서 염료를 충분히 쓸 수 없어서 보라색을 아주 연하게 쓰면서 나온 색이라고 한다. (그 분홍색이 어쩌다 지금은 공주병의 상징인 색이 됐나 싶다.)무꽃이 그런 느낌이다. 색이 너무 고와 곱게 염색해 입어보고 싶은 색이지만, 가난해서 끄트머리만 살짝 찍어 번진 듯, 모습이 참 소박해서 멋을 내다 말은 젊었을 때 엄마 모습 같아 괜히 슬프다.

그 뒤로 무꽃을 피우려 봄이면 애쓰지만, 그나마 부지런하지 않으면 보고 싶은 꽃도 제대 못본다.

 

다락밭에 핀 입하의 꽃들

▲     © 느림   카모마일

 

▲     © 느림   갓꽃

 

▲     © 느림  작약

 

▲     © 느림  밀꽃

 

▲     © 느림   밀꽃이 핀 밀밭      너무 예뻐서 감상만하다가 결국 참새밥이 됐더랬다.



<입하 밥상 이야기>

솎음

텃밭농사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솎는 데 있다.

상추, 겨자채, 청경채, 쑥갓이 바글바글 올라왔다. 올해는 유난히 탐스럽게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예년 같지 않게 풍족하게 내린 비 덕인 것 같다.

 

▲     ©느림

 

빡빡하게 자란 어린 상추싹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서 게 중 큰 것들을 쏙쏙 뽑아 야들야들한 상추를 한 소쿠리 수집한다. 청경채니, 겨자채니 다른 잎채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솎은 잎채소 모둠으로 비빔밥도 해먹고, 비빔국수도 해먹고, 겉절이도 한다. 다음날 가면 솎아준 만큼 더 쑥쑥 자라 있다. 그럼 또 솎아주고 엄마네로 보내고, 다시 솎아서 언니네로 보내고, 친구네로 보내고.

사먹는 쌈 채소들과는 격이 다른 맛이다. 이맘때 솎은 것이 제일 맛있다. 이렇게 매력인 잎채소를 매일 솎아 먹다가 질릴 때 즘이면 날이 더워지고 상추 맛이 뚝 떨어진다. 내키지 않아 버려둔 상추에서는 꽃대가 올라온다. 장마와 함께.

 

모종을 사다 드문드문 심는 사람들은 이 재미와 이 맛을 모른다. 솎는 것을 귀찮고 어렵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린이들과 솎음질을 하다보면 초토화를 만들어 솎았다기 보다 앞으로 한참 먹을 미래주자들을 싹쓸이 만들어 놓기 일쑤다.

 

▲     ©느림

 

그렇다고 해도 솎는 일은 해봐야 는다. 그리고 솎음질을 한 후 쑥쑥 자라는 채소를 보면 텃밭농사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이파리부터 쇤 것까지 맛도 다양하게 즐길 수가 있다. 귀찮아서 모종을 사다 심기에는 너무 큰 기쁨과 재미를 놓치는 거라고나 할까.

 

좀 무리한 장래희망이 있다면 채식주의자가 되는 거다. 그러기엔 하루도 육식을 포기할 수 없는 식습관으로 과연 그런 날이 올까싶지만. 언젠가부터 상추밭에 가서 입맛을 다시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좀 싹수가 보이는 것 아닌가? ㅋㅋ 기름진 음식이 아니고서야 입맛을 다셔본 일은 농사짓기 전엔 없는 일이었으니.

하우스 화학비료 상추를 먹지 않으려 오래동안 버텼더니 상추가 너무 고팠다. 겨울에 공부한 책을 보다가 제철이 아닌 채소들은 하우스에서 비료발로 키우다 보니 비만 채소가 되고, 비만 채소는 산소가 부족해서 위험한 음식이라는 표현에 기피해 왔다. 그 핑계로 고기를 더 먹긴 했지만.

 

열무도 솎아 먹고, 당근도 솎아 먹는다.

봄철 잎채소를 솎을 때는 큰 것 순으로 뽑아 먹는다면, 당근은 뿌리를 최대한 키우는 게 목표이니 제일 큰 것을 보호하고 주변 작은 것들을 솎는다. 당근 싹은 얇아서 솎는 게 힘들지만, 당근 이파리로 샐러드를 하고, 전을 해먹는 것은 딱 요맘 때만 즐길 수 있는 반찬이다. , 대단히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돌나물 물김치

돌나물은 다락밭 특산물이다. 어느 해인가 들판에서 캐다가 번식을 시켰는데, 십년 만에 다락밭에서 가장 탐스럽게 자라는 식물이 됐다. 흔하디 흔해 다들 거들떠도 안보는 풀이지만, 이것으로 물김치를 담그면 돌나물의 진가에 다들 놀란다.

 

▲     ©느림

 

▲     ©느림

 

몇 해 전, 돌나물 물김치를 담가 나눠먹었는데, 물김치를 받은 분이 입맛 잃은 여든 노모에게 드렸더니 입맛이 돌아오셨다나? 그래서 며칠 동안 물김치랑만 밥을 맛있게 드셨다나? 이 얘기를 듣다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 물김치 내가 담근 거 맞아?” “그럴 리가……?”였다. 가끔 소가 뒷걸음으로 쥐도 잡는다더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돌나물 물김치 맛의 비밀은 순전히 돌나물에 있지 내 손맛에 있지 않다. 돌나물은 육즙이 풍부해서 물김치를 담그면 육즙이 김칫국물로 빠져나와서 그 시원하고 게운한 맛이 국물에 스며든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돌나물을 깨끗히 손질하고, 거기에 소금물을 부어주는 일이다.

 

복잡하게 하려면 풀도 끓여 넣고, 감칠맛 나는 액젓도 좀 넣고, 단맛 나는 양파도 좀 갈고, 칼칼한 맛 나는 쪽파 좀 쪼개 넣고, 돌나물 옆에서 자라는 돌미나리도 뜯어서 같이 넣고 그러면 된다. 다들 알겠지만 김치랍시고 돌나물을 소금에 절이는 바보 같은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 , 대충 담가도 돌나물 맛이 어디 안 간다.

물김치를 담그려면 돌나물이 금방 무르니 이른 봄의 여린 것보다는 꽃이 피고 줄기도 많이 자라고 제법 쇠진 것이 좋다. 딱 요맘때가 제격이다. 동네 어르신이 꽃핀 돌나물을 보고 맛나겠다며 돌나물을 꽃도 먹는다고 얼른 뜯어 먹으라고 알려주셨다.

 

▲     ©느림

 

▲     ©느림

 

이렇게 담근 물김치는 해장에 그만이다. 과음한 다음날 물을 좀 타서 한 사발을 들이키면 술이 확 깨는 고마운 해장국물이다. 그러니 술을 안 먹을 수가 있나. 이 맛을 위해서라도 전날 건배~! 배고플 때는 국수를 삶아서 휘휘 말아 먹는다. 역시 고마운 맛이다. 이 정도면 돌나물물김치 예찬론자가 될 수밖에.

 

▲     ©느림

 

 

여든 노모의 잃어버린 입맛도 재생시킨다는 돌나물 물김치. 꼬옥 도전들 해보시길.

돌나물 구경 힘든 분들은 다락밭으로!

 

,사진: 느림 nreem@naver.com 생활문화탐구소 틈 http://cafe.naver.com/tmtm20

이 글은 매화동에 있는 생활문화탐구소 틈+다락밭에서 그간 함께 농사지으면서 기록해온 농사일지를 24절기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것입니다. 다락밭은 화학비료, 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토종씨앗으로 유기순환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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