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청명

2018년4월5일 맑고도 밝다는 청명淸明이건만!

느림 | 기사입력 2018/04/06 [22:04]

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청명

2018년4월5일 맑고도 밝다는 청명淸明이건만!

느림 | 입력 : 2018/04/06 [22:04]

201845일 맑고도 밝다는 청명淸明이건만!

양력 4월 초순에 들었으며, 다섯 번째 절기 청명은 맑고 밝다는 뜻이다. 창밖을 보면 이 얼마나 잘못된 세상인지 실감하게 해주는 뿌연 아파트숲이 절기력을 민망하게 한다. 불과 몇 해 전 농사일지만 찾아봐도 청명한 날씨의 꽃봄은 그래도 있었다. 최악의 봄날을 맞으며, 설마 청명한 봄날, 꽃구경 가는 봄날이 그저 추억에만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며 두려움을 가져본다.

 

밭일과 살림

당근 심기

강낭콩 심기

토란 심기

옥수수 심기

 

꽃봄

매화가 터졌다. 열 번 삽질을 하고, 허리를 펴니 한 송이가 더 핀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와 보니 한 송이가 더 핀 것 같고. 무궁화 꽃도 아니고 고개만 돌리면 한 송이씩 터뜨리려 작정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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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을 부쳐봤다. 화전에서 대단한 맛이라도 날 줄 알았더니 기름에 튀긴 찹쌀떡 맛이다.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씹어보면 향긋한 매화향이 입에 돈다. 같이 농사짓는 친구는 비염으로 이 향기를 못 맡겠다니 어찌나 안타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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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 뒤에 오는 봄꽃은 유난히 기다려지고, 생애가 짧기로 이름을 날려 유난히 조바심난다. 혹여 꽃과 눈도 못 마주치고 봄이 가면 어쩌나 하면서 말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모르는 때가 더 살기가 좋았나싶은 생각까지 든다.

매화에 이어 살구꽃이 피었고, 자두꽃이 피려고 막 준비 중이다. 뒷산에 올라갔더니 산수유가 지고 있고,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담장 개나리는 이미 며칠 전부터 샛노랗게 동네 골목을 장식했다. 개나리는 제법 오래 피어있는 꽃이라 보는 사람을 조바심 나게 하지 않아 좋다.

아파트 입구에는 목련이 분유 색으로 몽울몽울 피었다. 이번 주가 봄꽃의 절정이리라! 가족들한테 주말에 꽃구경을 가야겠다고 번개 문자를 보냈는데, 바쁘다며 줄줄이 퇴자를 놓는다. 나는 꽃구경이 바쁜데…….

어제 비에 매화가 모두 떨어졌다. 대신 콧구멍에 들어오는 공기가 달라졌다. 때는 이때라고 간만에 세차도 했다. 본래의 차 색깔을 오랜만에 본다. 먼지를 두 바가지는 마셔야 이 봄이 가는가 싶다.

 

겨울 난 대파

겨울난 대파가 통통해지면 곧 꽃대가 올라온다. 씨받을 대파를 남겨두고 거둬들여 보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나무처럼 꼿꼿하고 강직한 대파를 먹어야 하는데, 4월 대파는 오래오래 씹어도 줄기의 심이 사라지지 않으니 앞으로는 선비의 꿋꿋함을 4월 대파에 비유해야겠다 생각했다.

 

▲     © 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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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가 다 그렇듯 냉장고에서도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싱싱할 때 먹고 일부는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국물을 끓일 때 한줌씩 넣는다. 그럼 다음 대파를 거둘 때까지 아쉽지가 않다. 물론, 냉동대파의 맛은 썩 좋지 않다. 그런데 가만 보면 젊은 친구들은 채소를 손질해서 싹 냉동실에 넣고 먹는 경우를 종종 봤다. 냉동실이 무슨 만능 보관소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냉동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것은 맛이 그만큼 떨어지고, 본래 가지고 있던 영양은 거의 사라진다고 봐야한다. 생으로 그때그때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것 까지 제발 냉동실로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난 대파로 해먹는 것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대파구이다.

대파구이의 가장 착한 점은 술안주로도 제법 훌륭하다는 점일 거다. (음식을 술안주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로 가치를 따지는 태도를 자제하려고 노력중이긴 하다.)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 바질을 약간씩 뿌리고 버무려 오븐에 구우면 끝이다. 즙이 잘 살아있도록 오븐 온도와 시간을 조절하면 더 좋고.

 

대파를 너무 많이 넣은 국을 엄마는 들큰하다고 싫어한다. 싫어하거나 말거나 농부는 그저 많이 남는 것을 많이 먹을 뿐, 국을 끓일 때마다 한 움큼씩 넣어 먹는다.

대파를 살짝 데쳐서 갖은 양념에 무쳐 먹기도 하는데, 좀 미끄덩거려서 살짝 비호감이다. 요즘에 백반을 파는 식당에 가면 반찬으로 많이 나온다. 백반집 대파무침은 내가 만든 것 보다 어쩜 그리 맛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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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만날 밥상에 대파를 올리고 질리지도 않았는지 이번엔 봄대파를 심어본다. 대파는 씨를 뿌릴 때 조밀하게 뿌려 실파로 키운 다음 장마철에 넓은 밭에 듬성듬성 옮겨 심는다. 다락밭에서 심는 대파는 조선대파로 앞밭 어르신이 자부심을 느끼며 대대로 채종하고 있는 토종씨앗이다. 그것을 얻어 다락밭에서도 귀하게 보존하고, 봄이 되면 이웃에게 나눔 한다.

 

얼마 전에 연재하고 있는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림에 대파를 너무 짧게 그렸다고 좀더 길게 그려달라는 것이다. 처음엔 그 말을 이해를 못했는데, 오랜만에 마트에 가서 왜대파를 보고는 대파를 길게 좀 그려달라고 한 이유를 알았다. 왜대파는 흰대의 길이가 조선대파의 3배쯤은 되는 것 같았다. 조선대파는 흰대가 짧아서 마트에서 파는 길쭉하고 흰대가 긴 왜대파처럼 상품성은 없다. 굵고 탄탄한 게 향이 진하고 이 동네 토양에 잘 맞는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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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온갖 씨앗이 튀어나와 땅으로 들어갈 철이다. 잎채소에 이어, 당근과 부추, 강낭콩, 옥수수를 심을 때다. 매일매일 뭔가를 밭에 쑤셔 넣듯이 해도 뒤돌아보면 심을 거리가 밀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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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매년 씨앗을 심는 일은 질리는 일이 아니고, 메마른 알갱이가 보여주는 생명력은 매년 만나도 그 신비감이 줄어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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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느림 nreem@naver.com 생활문화탐구소 틈 http://cafe.naver.com/tmtm20

 

이 글은 매화동에 있는 생활문화탐구소 틈+다락밭에서 그간 함께 농사지으면서 기록해온 농사일지를 24절기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것입니다. 다락밭은 화학비료, 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토종씨앗으로 유기순환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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