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춘분

2018.3.21. 땅 뒤집는 春分

느림 | 기사입력 2018/04/06 [20:33]

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춘분

2018.3.21. 땅 뒤집는 春分

느림 | 입력 : 2018/04/06 [20:33]

 

춘분은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이며, 양력3월 하순에 들었다. 동지부터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 해가 드디어 밤의 길이와 같아져 봄에 이르렀으니, 곧 한봄이라는 뜻이다.

춘분에 밭을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곯는다는 속담처럼 퇴비 넣고 땅 일을 하는데 여념이 없을 때다. 올 춘분날, 감자밭을 만들러 밭일을 하다 보니 웬 눈이 다 내린다. 눈 좀 맞고 일하면 좀 어떠리 싶어 급한 일만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점점 눈이 굵어지더니 함박눈이 됐다. 봄은 순순히 오는 법이 없다. 기어코 우여곡절을 만들면서 온다.

눈이 오는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인지, 어제 감자밭 갈기를 마무리 지은 앞밭 어르신네가 부럽다. 매번 어르신은 한발 앞서고, 나는 한발 늦는다. 근데 이 한발 차이가 거둬들일 때면 천지차이가 되어버린다. 알면서도 참 …….

 

밭일과 살림

밭 뒤집기

각종 잎채소씨 뿌리기

대파, 부추씨 뿌리기

완두콩 심기

감자 심기

 

일요일.

밭에 나갔더니 그간 어디 숨어계셨는지 그림자도 안 뵈던, 이밭 저밭 농부들이 등장했다. 다들 밭 갈기에 여념이 없다. 봄이 온 것인지, 겨울이 간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초봄엔 이런 풍경이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일요일이라고 빈둥댔다면 이 풍경은 못 봤으리라. 원래 나도 봄이 온줄 알고 있었다는 듯 슬쩍 삽을 들고 분위기에 묻어간다.

이 밭에서 저 밭으로 대화가 던져지더니, 그 무뚝뚝한 앞밭 아주머니가 "봄 되니 만나게 되네요,"하고 먼저 인사를 다 건낸다. 봄은 너그럽다.

겨우내 놀다가 끌려나온 농기구에 지난 늦가을 제대로 털어두지 못한 묵은 흙이 덕지덕지 보인다. 내 몸에 붙은 군살 같다. 그나마 절기력이 춘분을 가리키지 않았다면 더 늑장을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 © 느림

 

감자심기

작년에 먹다 남은 감자를 잘 갈무리 해두었다가 남은 감자를 씨를 삼았다. 사람이나 때를 몰랐지, 자기 때를 아는 감자는 냉장고 속에서도 싹을 틔웠다. 대파뿌리는 무려 냉동실 속에서 새움을 올렸다.

언제부터인가 씨감자를 사지 않고, 먹다 남은 감자를 쓰고 있다. 고랭지 출신 감자로 씨를 사서 쓰는 것이 수확량을 높이는 길이라고 책에는 나오지만, 조금 덜 먹더라도 씨앗 자립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조금씩 조금씩 생길 때마다 뿌우드읏~ 하다.

 

 

▲ © 느림

 

▲ © 느림

▲ © 느림

 

 

감자두둑을 만들고 있자니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다. 어디선가 오랜만에 나나님이 등장했다. 과연 밭만들기 초인이라는 명성답게 예쁜 감자두둑을 쓱쓱 만들었다. 잠시 후, 늦어서 미안하다며 물방울님이 바람같이 등장하더니 금세 감자골에 감자를 넣었다. 또 잠시 후, 현님이 쏜살같이 와서는 씨감자 위로 흙을 덮었다. 싱거울 정도로 감자심기가 빨리 끝나버렸다.

 

 

▲ © 느림

 

감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심어 봤다. 캬아! 녹슬지 않은 느림의 실험정신!! 두 두둑은 가운데 깊이 심고, 두 두둑은 견종법으로 두둑의 어깨밑에 심었다. 과연 무엇이 먼저 나오고, 실하게 맺힐지 두고 보리라.

 

마늘 웃거름 주기

마늘이 아주 예쁘게 쏘옥쏘옥 올라왔다. 이른 봄 마늘대가 손가락 길이 만큼 올라오면 마늘의 새 밥이 필요할 때다. 골마다 흙을 파고 웃거름을 줬다. 겨우내 삭힌 퇴비 한줌과 오줌 한 바가지씩. 애써 모은 유기물은 저 귀여운 마늘을 푹푹 키워 줄 것이다.

웃거름을 주고 있자니 더러 씨알이 썩어버렸는지 빈 자리가 있다. 지난 혹한을 결국 못버티고 얼어버렸을 것이다. 흙을 좀 더 꼼꼼하게 덮어주었더라면, 이른 봄에 좀 더 꾹꾹 밭밟기를 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

 

▲     © 느림

 

▲     © 느림


완두콩 밭 만들고 한숨 쉬려하면 감자밭 갈 일에 한숨이 나오고, 감자밭 좀 해치웠다 싶으면 상추밭 만들어야 하고, 당근밭 만들어야 하고. 농번기란 이런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이 나에게 달려든다. 호미도 나도 쉴 틈이 없다.  

 

,사진: 느림 nreem@naver.com   생활문화탐구소 틈 http://cafe.naver.com/tmtm20

 

 

 

이 글은 매화동에 있는 생활문화탐구소 틈+다락밭에서 그간 함께 농사지으면서 기록해온 농사일지를 24절기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것입니다. 다락밭은 화학비료, 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토종씨앗으로 유기순환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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