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우수

2018년2월19일-봄비 오는 雨水우수

느림 | 기사입력 2018/02/26 [14:44]

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우수

2018년2월19일-봄비 오는 雨水우수

느림 | 입력 : 2018/02/26 [14:44]

 

이십사절기 중 봄을 시작하는 첫 번째 절기 입춘이 지나고, 두 번째 절기 雨水우수다. 우수는 양력 2월 하반기에 들었다. 우수, 경칩에는 대동강 물도 녹는다하여, 봄을 알리는 징조들이 완연하게 드러나는 절기다. 이때 얼은 것들이 녹으면서 깨지고, 새고 정신없다. 독이 깨지거나 언 수도가 터져서, 가끔 사람들은 2월이 가장 춥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우수는 봄비라는 뜻인데, 올해 우수 날에는 눈을 녹여주는 봄비는 오지 않았다. 비는커녕 어찌나 가물었는지 간간히 산불소식만 들릴 뿐이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할 때다. 누군가 불씨라도 떨구고 높새바람 불어준다면 그야말로 큰 재난을 만나야할 테니 말이다. (글을 쓰는 22일밤 드디어 하얗게 눈이 온다. 기온을 보니 곧 비로 변할 것 같다. )

 

우수에 해야 할 살림이나 밭일

-왕겨 퍼 와서 퇴비 띄우기

-마늘밭 밟기

-농기구 손질하기

-장 담그기

-남은 늙은 호박 썩기 전에 뭔가 하기

 

아직 손이 곱는 추운 날씨지만, 계속 한겨울처럼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다가는 봄을 도둑맞은 기분으로 봄철이 지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바지런을 떨어본다. 겨우내 병치레를 했으니 양심이 있으면 몸에 대한 최소의 예의를 차려야겠기에 헬스장을 끊었다. 헬스장은 한 달 이상 꾸준하게 다녀본 적이 없으므로 석 달 할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딱 한 달만 끊었다. 그리고 덥수룩해진 머리를 손질하러 미용실도 들렀다. 싹둑 자르고 나왔더니 돌아오는 길엔 뒷모가지가 썰렁하다. 좀 더 햇살이 봄스러워지면 손댈 것을 그랬나싶다.

 

장 담그기

 

미용실 옆, 곡물상회가 새로 생겼는데 메주를 다 판다. 아마 아파트 밀집지역에서는 보기 드믄 풍경일 거다. 보통 정월장이라고 하여 음력 정월이 되면 장을 담근다. 설이 지났으니 메주를 사서 장을 담글 때다. 나도 얼마 전 메주 한말을 사두었다. 두 해 전에 장을 담그고, 지난 해 된장 겹장을 했으니 된장은 아직 많이 있지만 조선간장이 없어서 올해는 간장중심으로 장을 갈라보기로 엄마와 계획했다. 명절 지나 19, 우수 날이 맑으면 이날 담그려고 했으나 장 담기엔 아직 추워서 다음 돌아오는 말날에 담그기로 다시 날짜를 잡아봤다. 부지런한 엄마는 벌써 메주를 싹싹 씻어 말려두었단다.

 

 

  

입춘에 날이 흐리고, 눈이 오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더니 올 입춘이 그랬다. 봄이 오는 꼴을 보니 긴긴 겨울이 어서 가길 바라는 사람의 애간장을 여간 태울 게 아닌가 보다. 이러다 옛날처럼 나물이라도 캐면서 동네 총각들한테 분내라고 폴폴 흘릴 작정이던 봄처녀라도 있었으면 방구석에서 숨넘어가겠다. 봄처녀는 아니지만 나도 겨울밭에 나가 이제나 녹나, 저제나 녹나 땅바닥에 붙은 언 냉이만 쳐다보고 있다. 냉이 된장국, 냉이 부침개, 냉이 무침……. 내 생각에 봄기운이 늦은 것은 작년에 윤달이 끼어서 올해까지 영향을 미쳐 정월이 늦게 온 탓도 있는 것 같다. 입춘지나 설이 오면 추운 봄이 된다고 했다. 어르신들 말씀도 윤달이 끼면 뭐든 늦된다고들 그랬다. 나는 시간이 조금 더디 흐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게으른 사람들은 더러 나처럼 느낄 것 같다.

   

퇴비 띄우기

 

며칠 동안 영하로 꽁꽁 얼어붙었다가 살짝 영상으로 오른 날씨를 틈타 올해부터 같이 농사짓기로 한 구슬씨와 똥통, 오줌통 청소를 했다. 구슬씨는 생태화장실을 처음 써볼 테니 통을 비우는 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난감한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얼른 같이 청소를 해야겠다 싶었다. 내친김에 꽉 찬 남은음식물통과 커피찌꺼기 모은 통도 싹 비웠다. 그야말로 유기물 잔치다. 퇴비를 뒤집기엔 아직 땅이 덜 녹아서 유기물들을 붓고 왕겨만 올려주었다. 바깥수도도 안 나오는 한 겨울엔 통을 비워도 씻어서 말끔히 청소할 수가 없어서 여러모로 힘들다. 불편하다 못해 원시적인 틈 생활에 나도 이제 지치는 것 같다. 물이 콸콸 내려가는 새하얀 수세식양변기! 갖고 싶다.

 

사용은 불편해도 퇴비간으로 갈 때는 귀해지는 게 똥오줌이다. 심지어 통을 닦아낸 물도 귀하게 여겨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고 꼭 밭에다 부으라며 다락밭엔 똥물도 귀해요.’라고 신참 농부에게 신신당부하는 내 모습은 정말 오지다큐멘터리에나 나올만하지 않을까. 이 궁상맞은 말을 뱉어 놓고 민망하여 후회하면서도 뒤돌아 신참농부가 내말대로 구정물을 허튼 데 버리지 않나 가재 눈으로 힐긋힐긋 감시하는 꼴이란……. 퇴비자립, 유기순환농사를 지어보지 않고서는 이 유난을 절대 공감 못할 터이다. 그러나 곰곰이 또 생각해보면 우리가 땅에게 인심이랍시고 화학비료 팍팍 뿌리며 똥을 똥 취급해 외면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나이의 사람들만 해도 이야기 나누다 보면 재래식 변소에서 똥을 돈 받고 귀하게 팔던 시절에 대한 경험이 더러 튀어 나온다. 밥은 나가서 먹어도 똥은 들어와서 누라는 할아버지(아마 농가의 퇴비담당은 주로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잔소리를 추억으로 가진 사람들 또한 시골출신 다섯이 모이면 하나쯤은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똥이 땅을 거쳐 곧 밥이 되는 자연스러움을 문명이 닫지 않는 오지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것은 놀랍게도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40년 전만해도 똥을 팔고 사는 문화가 있었으며, 화학비료를 땅에 대량으로 투척하기 시작한 시절도 약 50년대 정도다.

 

도시에서는 처치 곤란해 하는 것들, 버릴 때 세금을 내고 버려야하는 것들, 냄새나고 역겨워 안 보이는 구석에 몰아넣고 일상에서 없는 취급을 하는 것들, 그러다 쌓이고 쌓여 결국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들, 존재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골칫거리. , 오줌, 남은 음식 등.

 

농사를 처음 지을 때 한번은 틈 주변을 청소하다가 개똥이 하도 많아 모아서 거름통에 갖다 넣었다. 그걸 본 같이 농사짓는 친구가 개똥 주우러 다니는 느림을 보니, 아침마다 개똥을 주우러 다니시던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난다는 글을 개인사책에 남겼다. 그 뒤로 난 사람들에게 요즘 개똥 주우러 다니느냐는 안부 인사를 들어야 했다. (난 절대 동네 개똥을 주우러 다닌 적이 없음을! 믿어주시길!)

 

날이 살짝이라도 풀리는 대로 곧 퇴비를 뒤집을 거다. 겨우내 모은 유기물로 진짜 퇴비잔치를 하는 거다. 남은 음식과 주변 가게에서 수거해온 커피 찌꺼기, 생선대가리 등을 깔고, 얻어온 왕겨와 쌀 찌꺼기로 덮는다. 예전에 부지런할 때는 무슨 정성으로 인근 야산에서 낙엽과 부엽토를 긁어다 덮어 주었다. 이렇게 켜켜이 쌓으며, 오줌이나 이엠, 쌀뜨물을 부어 습도를 맞춰준다. 퇴비더미를 잘 덮어 발효시키고 2주 뒤에 열어보면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이것을 다시 엎어준다. 위에 있는 것을 아래로, 아래 것을 위로. 다시 발효시킨다. 잘 숙성된 퇴비는 좋은 흙냄새가 난다. 손으로 만지면 보슬보슬 하다. 이 맛있는 퇴비를 가장 먼저 움을 올린 마늘밭이 맛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유기물로 농사를 몇 해 지으면 땅이 살아나는 것을 대번 느낄 수가 있다. 고작 일 년 시도로 유기농사를 못 짓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찌든 땅이 살아나려면 3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말이다.

 

 

마늘밭 밟기

 

날이 풀렸다 얼었다를 반복하면서 땅이 비스킷처럼 부풀어 올랐다. 곳곳에 작년 초겨울에 심은 마늘이 낼름 낼름 올라와있다. 행여 얼까 얼른 뒤꿈치로 다시 파묻고는 밭 전체를 꾹꾹 눌러줬다. 바삭바삭한 땅이 내 몸무게만큼 쑥쑥 들어간다. 아직은 봄의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밭에서 절기가 가리키는 때를 따르는 것이 농부의 시간이다. 나에게 마늘밭 밟기는 입춘, 우수가 오면 행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이렇게 꾹꾹 겨울을 밟아 넣고, 생기 없는 내 몸에도 봄맞이 근육을 만들어 본다.

 


 

이렇게 밭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뜻밖의 선물을 만난다. 이르게 핀 냉이꽃이라던가, 쇠별꽃이라던가. 이렇게 오는 계절의 가장 앞선 얼굴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란 게 땅바닥만 보고 사는 농부에게 허락된다. 올해는 아직 냉이꽃을 보진 못했지만, 새파랗게 올라온 카모마일의 움을 보았다. 땅이 녹으면 파다가 화분에 옮겨놓고, 문턱을 드나들 때 마다 꽃을 보리라

 

 

 

 

,사진: 느림

생활문화탐구소 틈 http://cafe.naver.com/tmtm20

 

 

 이 글은 매화동에 있는 생활문화탐구소 틈+다락밭에서 그간 함께 농사지으면서 기록해온 농사일지를 24절기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것입니다. 다락밭은 화학비료, 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토종씨앗으로 유기순환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최영숙 18/02/26 [15:46] 수정 삭제  
  느림 샘,반갑습니다. 봄이 성큼 다가섬을 느낍니다. 농사일지로 보는 24절기의 흐름이 어떨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귀한 글 고맙습니다.
느림 18/02/26 [17:25]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느려서 쉽지가 않네요.^^ 여기서도 뵙고, 길에서도 만나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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