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벌의 애환이 살아있는 창작뮤지컬 ‘1721호조벌’

순수 예술로 끌고 나갔으면 더 좋았을 공연

이연옥 | 기사입력 2017/12/26 [11:47]

호조벌의 애환이 살아있는 창작뮤지컬 ‘1721호조벌’

순수 예술로 끌고 나갔으면 더 좋았을 공연

이연옥 | 입력 : 2017/12/26 [11:47]
▲     © 이연옥

 

  ‘1721호조벌이라는 제목으로 창작뮤지컬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이 폭발하였다. ‘호조벌이란 제목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궁금하였다. 그것은 내가 호조벌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였고, 즐겨 산책하는 코스이기도 하고, 가끔 호조벌 이야기를 글로 쓰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흥시 지명으로 창작품을 만들어 공연을 하는 것을 자주 만나지 못 했었다. 물론 다른 예술분야에서 시흥시 지명을 두고 다룬 적이 있지만 뮤지컬 공연을 한다니 관심이 많았다.

 

  1215일부터 16일까지 양일간 총 3회하는 공연이 어떤 단체에서 하는 공연인지, 유명 연기자들을 큰돈을 주고 하는 공연인지. 시흥지역의 어느 단체에서 하는 공연이지도 궁금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조벌이라는 벌판을 두고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 것인지 궁금증이 가시질 않았다. 호조벌에서 일어나는 교육적인 이야기일까? 아니면 호조벌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될까? 아니면 시흥시 곡식창고에 초점을 맞추었을까? 아니면 호조벌에서 일어나는 사랑이야기일까? 여러 가지로 상상을 하면서 공연이 있는 둘째 날 시간에 맞추어 시흥시청 늠내홀에 당도했다.

 

▲     ©

 

  공연을 관람하면서 알게 되었다. 공연에 참가한 연기자들이 시흥 청소년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관내 중, 고등학생들이다. 지난 7월부터시흥시립합창단과 전문예술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 연습을 하였다고 한다시흥시가 주최하고 시립합창단이 주관하는 공연이었다.

  뮤지컬을 자주 접하지 못했지만 영상이며 무대장치며 눈과 귀를 호강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시흥 청소년들이 시흥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서 좋았다.

 

  간척역사가 있는 호조벌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배경은 시흥시 매화동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300년 전으로 타임슬립 하여 일어나는 일들로 화해로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굳이 이 이야기에 제목을 붙인다면 대사에서도 나왔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거나 화해라고 붙이고 싶었다.

 

▲     © 캡쳐

 

  내가 뮤지컬 호조벌을 관람하면서 더 감명 깊었던 것은, 그 속에 나의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더 깊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호조벌 간척을 하기위한 조선시대 역사이야기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예전에 호조벌에서 농사를 짓던 이야기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를 더 극 속으로 끌어들이게 한 것은 호조벌에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주저앉는 모습을 볼 때이다.

 

▲     © 시흥시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호조벌에 홍수가 나면 이곳 저곳에서 둑이 터져 농민들은 비를 맞으며 집집마다 멍석을 들고 나오거나 짚단을 들고 나와 큰 둑을 막느라고 밤잠을 설치던 일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그 때만 해도 터진 둑을 막는데 볏짚으로 엮은 멍석만큼 좋은 재료는 없었다. 하지만 밀려들어오는 물길을 막는데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 터진 뚝 앞에서 홍수에 덮쳐서 진흙과 모래에 묻힌 벼들을 보면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던 풍경이 떠올랐다. 20년 전 썼던 필자의 시가 떠 올라서 올려본다.

 

새벽의 비애- 이연옥

 

몇 날 몇 밤 폭포같이 내리더니

한 길이 훨씬 넘는 냇둑

싹뚝 잘려 나갔다

 

희미한 새벽 빛에 비친 허연 물바다

합칠 수 없는 물줄기들 한데 엉겨

미친 듯 넘실대는 악마의 춤

신들린 밤 무희가

현실과 공허를 넘고 있었다

 

시뻘건 심장까지 드러낸

저 검은 흡혈귀의 아가리

버텨 온 마지막 힘마저 모두 마셔 버렸다

 

여리가만 한 벼 호기 위의 모래산

논바닥 가득한 골 패인 상처

 

천 길의 나락으로 주저 앉아

부부가 서로를 추켜 세우고 있었다

 

  호조벌에 이런 애환이 있는 걸 아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호조벌이 이런 애환을 안고 지금의 호조벌이 된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호조벌이 마구 잘려 길이 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창작뮤지컬 호조벌이 호조벌에 대한 역사와 농민들의 실상을 그대로 그려내서 감동적었다.

 

  이번에 처음 공연한 창작뮤지컬 호조벌은 시흥시 자체에서 시도했다는 점과 시흥시 청소년들이 출연해서 공연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뮤지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내용면에서 영상면에서 훌륭한 공연이었다.

 

  다만 이렇게 좋은 공연을 순수한 예술로 끌고 나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재편해서 공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도 시흥시 농민으로 햇토미를 홍보하는 것도 좋지만 햇토미가 좋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것보다 이 간척사업 이야기 자체가 시흥시 햇토미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는데 중점을 둔다면 더 이상의 홍보글이 무슨 소용있을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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