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이구나, 읊조리며 걷는 호조벌입니다.

가을 속에 든 벼이삭 그리고 풍경들

이연옥 | 기사입력 2017/10/05 [22:16]

풍년이구나, 읊조리며 걷는 호조벌입니다.

가을 속에 든 벼이삭 그리고 풍경들

이연옥 | 입력 : 2017/10/05 [22:16]

 

 

▲     ©이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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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조벌 구경하세요.

  추석 명절 아침 모처럼 산책 나선 호조벌 꼭 보여드리고 싶네요.

 

  나가는 길목도 가을이 내리고 가을의 느낌으로 나를 부르네요.

  아직 푸른 채로 있는 곳이 많은 데도 여름이 지나간 자리는 왠지 쓸쓸하고 휑하게 다가옵니다. 휑하다는 말을 써놓고 생각하니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예전에 어머니는 참 야속하셨어요.

  아직 초록빛일 때 초록이 시들고 있다는 느낌도 없을 때 갑자기 어떤 느낌, 언질도 없이 초록인 채로 누우셨던 어머니. 이 들길에서 어머니가 생각나는 건 뭘까요. 어떤 쓸쓸함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가을 들판, 호조벌은 그 쓸쓸함을 푸근하게 안아주겠지요.

 

 

 

▲     ©이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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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조벌을 향해서 가는 길목엔 갖가지 가을 곡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길을 안내합니다. 들깨며 아주까리. 고구마. . 고춧대, 마른 옥수숫대들, 그리고 김장채소들이 발을 맞추어주는데요. 들깨밭을 지날 땐 들깨냄새가 향기롭게 코끝을 스치기도 하네요. 그래도 바싹 마른 옥수숫대를 보면서 지날 땐 왠지 다시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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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을 벗어나 둑방에 들어선 호조벌은 벼들이 이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제 몸을 영글리고 있는데 올 여름 농부들과 벼들이 수고를 참 많이 한 거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 보았는데 저 벼들이 혼자 스스로 저리 탐스런 이삭을 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턱도 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올여름 농부들이 참 고생이 많았어요. 여름 내내 물이 넘치랴 마르랴 물꼬를 막아주고 터주고, 비료주고, 소독해 주고, 잡풀 뽑아주고 태풍이 오면 함께 바람을 막고 홍수에 함께 비에 젖으며 튼실하게 자라게 한 거죠.

 

   사실 농부들도 농부들이지만 흙과 벼와 농부들, 그리고 하늘, 사박자가 다 맞아서 생긴 일이니 들판을 바라보면서 참 사이좋은 자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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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판을 나서면 함께 어우러지는 야생화들이 있어서 걷는 발길을 싱그럽게 하는데 봄부터 들판은 냉이꽃, 민들레, 토끼풀, 찔레꽃, 방가지풀, 방동사니, 뱀딸기, 애기똥풀, 개망초, 양지풀, 고들빼기, 원추리, 제비꽃, 종지나물, 황새냉이 등 수많은 들꽃들이 계절을 지나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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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제 들판의 마지막 가을 들꽃들이 벼들의 배경이 되어서 카메라에 잡힙니다. 논둑이며 냇가에 어우러진 풀이며 야생화들은 다른 계절 풀과 다르게 왠지 쓸쓸해 보이는 느낌인데요. 여뀌, 구절초, 강아지풀, 쑥꽃, 억새꽃, 들국화, 엉겅퀴, 숙부쟁이, 벌개미취, 달맞이꽃 등 수많은 야생화들이 누런 벼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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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조벌에서 보이는 풍경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아파트들이 있습니다. 벌판 끝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자연 속에서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삭막하기만 한 시멘트의 아파트도  누런 황금 자연들과 어우러지면 한결 부드럽고 다정한 풍경이 되죠. 그래서 핸드폰 카메라를 여기저기 빗대어서 셔터를 누릅니다. 

 

 

 

▲     ©이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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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셔터를 누르다 보면 여지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소래산이 있습니다. 렌즈 안에서 소래산도 들판과 조화를 시켜보는데요. 예전에 호조벌에서 보이는 소래산은 우뚝 솟아 오른 참 멋진 산 이었습니다.

 

   농부들이 논에서 일을 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펴면 젤 먼저 보이는 것이 소래산 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후죽순으로 자라는 아파트들에 가려서 산봉우리만 보게 된답니다.

 

   소래산도 곡식들처럼 쑥쑥 자라는 산이었으면 하는 덧없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호조벌에서 보는 소래산은 언제 보아도 정겹기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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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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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저리 둘러보며 렌즈에 담다보면 이따금 홍수나 태풍이 지나간 흔적들로 헝클어진 벼들도 보이는데 그 논의 주인은 추수를 할 때 힘들게 추수를 하게 될 거예요.

 

   홍수나 태풍으로 벼가 쓰러질 때 비를 맞으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속이 상했을 농부들을 생각합니다. 밤잠도 못자고 지켰을 논둑이 넘쳤을 때 절망감이 보여서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그 절망감은 벼를 벨 때도 쓰러진 벼를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면서 벼를 베어야하니 또다시 속이 상할 테지요. 벼가 쓰러진 논을 지날 땐 안쓰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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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 알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주 탐스럽습니다. 이삭이 충실하고 통통하고 실하게 영글었네요. 논 주인이 여름 내내 고생하신 덕분이지요. 아침 저녁 호조벌에 벼의 상태를 보러 나오시면 입가에 미소를 지으실 게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요즘 쌀 소비가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쌀값이 내리거나 잘 안 팔리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논둑을 걷습니다.

 

▲     ©이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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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날 호조벌에서 새참을 나르고 볏단을 나르며 바쁘게 오가던 생각이 나서 오랫동안 농민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걷습니다. 여름 내내 매달려 지은 농사인데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듭니다.

 

   논과 논 사이 도랑의 물이 여유롭게 흐르네요. 엄마의 초록빛 이별처럼, 사람이나 자연이나 결과를 볼 수 없는 건 쓸쓸한 일이지요. 풍성한 결과를 보여주는 호조벌,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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