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질서를 누가 주도하느냐는 내 삶과 다소 거리가 먼 거대담론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례로 1980년대 미국은 세계경제 질서를 주도하면서 신자유주의 모델을 각 국에 전파, 강요했다. 그 결과 우리는 IMF외환위기를 계기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 깊숙이 편입되었고, 현재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질서는 당시 미국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세계경제 질서를 누가 주도하는지, 주도하는 세력의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경제 질서를 주도했고, 학교에서는 미국식 경제모델이 가장 효율적인 모델인 것처럼 가르쳐왔다. 즉, 미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시기였다. 그러던 것이 중국의 경제성장과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를 계기로 미국주도 경제 질서가 종언을 고할 것이란 전망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수논자들을 중심으로 최근 미국경제 회복(물론 지금 미국경제가 회복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많다)이 2008년 시작된 미국의 패권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의 시대’를 지속시켜 줄 것이란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중심에는 미국의 셰일에너지가 놓여있다.
거품 붕괴되는 셰일에너지 산업
셰일에너지는 모래와 진흙이 쌓여 단단히 굳은 셰일층에서 개발·생산되는 원유 및 천연가스를 말한다. 셰일에너지를 채굴하면서 미국의 일일 석유 생산량은 2008년 500만 배럴에서 2014년 867만 배럴로 70% 이상 급증했다.
셰일에너지가 ‘미국의 시대’를 유지할 수 있게 할 것이란 사람들은 셰일에너지 개발로 석유화학 설비투자가 늘어나고, 유전 시추가 늘어나면서 철강산업이 활기를 띄고, 저렴한 에너지비용으로 미국 제조업 전반이 혜택을 보고, 미국인들의 소비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미국이 석유 등을 수출해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를 확대해 경제가 급속히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미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연두교서에서 “우리는 향후 100년간 사용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셰일가스 개발로 향후 10년간 6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 경기가 바닥을 치고 조금씩 상승하는 배경에는 셰일에너지 개발과 관련한 설비투자 증가가 한 몫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초부터 셰일에너지 개발업체들의 파산과 해고, 투자 축소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미국의 셰일에너지 개발에 대응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늘리자 국제 유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를 떨어뜨려 고비용 구조인 셰일산업에 직격탄을 날리겠다는 의도다. 배럴당 100달러가 훌쩍 넘던 국제유가가 몇 개월 만에 40달러대 까지 떨어졌다.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 채굴 비용에 비해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소 업체인 WBH에너지, WHP인터내셔널과 엔데버인터내셔널 등이 연이어 파산했으며, 미국 내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헬메리치 앤 페인’마저 4건의 장기계약을 파기한 데 이어 2월까지 40~50개의 석유시추시설을 가동 중단할 것이라 밝혔다. 미국의 2위 석유기업인 셰브론 역시 올해 에너지자원 탐사 및 채굴 예산을 작년보다 13% 줄였으며, 로얄더치셸과 코노코필립스 등 대형 업체들도 수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을 잇달아 중단시켰다.
연이은 파산과 투자 축소는 당장 셰일개발을 위한 시추공 숫자의 급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1930개에 달했던 시추공 개수는 1543개(1월 30일 기준)로 수직낙하 중이다.
미국 셰일에너지 시추공(Rig) 개수(자료 : http://www.bakerhughes.com/)
셰일에너지 개발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고용부터 타격을 받고 있다. 미 텍사스와 노스다코다주 등의 신규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2015년 1월 한 달 동안 40000건 수준에서 75000건 정도로 수직상승했다. 셰일업계의 정리해고뿐만 아니라 셰일에너지 바람으로 혜택을 받아왔던 서비스 기업, 원유 탐사를 위한 소유권 및 임대계약을 하는 부동산 업자들과 시추장비, 트럭 등을 운영하는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앞으로 셰일업계의 파산과 투자축소가 더욱 늘어나면 해고되는 노동자들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셰일에너지 개발지역의 주 정부 예산도 타격을 받고 있다. 일례로 미 언론 <NOLA.com>에 따르면 루이지애나 주의 경우 원유 가격이 1달러 하락할 때마다 주 정부 수입이 110만 달러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로 인해 주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금 및 헬스케어 지원금이 삭감될 것으로 전해졌으며, 실제 2014년 12월 주 정부 지출이 1억 8000만 달러 삭감된 상태다. 루이지애나 지역은 상대적으로 셰일에너지 개발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인데도 이 정도이니, 텍사스나 오클라호마 지역 정부의 재정은 이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셰일산업의 근본적인 한계
셰일에너지 개발사업이 ‘미국의 시대’를 지속시켜 나갈 산업이 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셰일에너지 개발 비용이 전통적인 유전 개발 비용에 비해 비싸다는 사실이다. 셰일에너지는 전통 원유나 가스와는 달리 지하 2~4km에 달하는 깊은 곳에 있는데다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진흙층 틈새에 분산되어있어 채굴이 어렵다. 이 때문에, 셰일에너지는 최초 채굴이 1825년에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탐사의 어려움과 생산 비용 문제로 대량생산을 하지 못했다. 셰일에너지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수직채굴 공법에 새로 개발된 수평시추-수압파쇄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수평시추(horizontal drilling) 기술은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다 특정 깊이부터 수평으로 뚫어가는 기술이고 수압파쇄(hydraulic fracturing) 기술은 시추 파이프에 뚫린 여러 구멍으로 물, 모래, 화학물질 등을 높은 압력으로 분사하여 암석에 균열을 만드는 기술이다.
셰일에너지 채굴 방법 개념도(자료 : 한국염색가공학회)
게다가 셰일 유정의 수명은 약 3년으로 전통적인 유전에 비해 훨씬 짧기 때문에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신규 유정을 개발해야 한다. 당연히 개발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천연가스나 원유의 국제 가격이 특정 가격 이하로 하락하면 셰일에너지를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처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동 산유국이 증산을 통한 가격전쟁으로 미국의 셰일업체들을 압박할 수 있는 이유다.
둘째는 채굴 가능한 셰일에너지 매장량이 매우 부풀려져 있다는 점이다. 석유공학에 관한 한 그 권위를 가장 높이 인정받는 미 텍사스 대학 석유 지질학과의 태드 팻잭(Tad Patzek) 교수 연구팀은 2014년 11월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미 국책 에너지연구기관들이 셰일에너지 기업들의 채산성 있는 시추공을 표본으로 삼아 미국 셰일가스 매장량을 산출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비판한 바 있다(<미래한국>, 2015. 2. 4 보도). 그에 따르면 “미국의 셰일에너지 매장지역에는 많은 호수들과 대도시들이 존재하며 그러한 곳에서는 수압파쇄식의 셰일가스 시굴방법으로는 석유를 캘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팻잭 교수팀은 미국의 셰일에너지 매장량이 2017년 정점에 달한 후 급속하게 고갈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원유·가스 탐사업체인 샌드리지사는 2012년 11월 셰일오일 예상 매장량을 유정당 45만6000배럴에서 42만2000배럴로 수정한 후, 5개월이 지나 이를 다시 36만9000배럴로 다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초기의 과대평가된 매장량은 생산량이 좋았던 몇 개의 유정을 기준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채굴기술 개발로 생산효율이 증대되고 채굴 가능한 가스의 양도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전체적으로 부풀려진 매장 추정량 자체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셋째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셰일에너지 개발에 너무나 많이 몰렸다는 점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이 사상 유래 없는 ‘양적완화’정책을 펴고 기준금리를 0%로 만든 조건에서, 갈 곳 없는 자본들이 셰일에너지 개발에 몰려갔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4분기까지 셰일산업에 투자된 자금이 확인된 것만 무려 560억달러, 우리 돈으로 56조원 이상에 달했다. 개발업체 입장에서도 저렴한 이자로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고,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중소규모의 개발 업체가 우후죽순 난립하고 대기업조차 과도한 투자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개발 직후부터 나타나기 했다. 셰일 유정을 파보니 예상보다 상황이 열악했던 것이다. 일례로 일본 스미토모상사는 회사가 투자했던 셰일 유전층이 애초 예측과는 달리 복잡해 채굴 비용이 크게 늘어나 2014년 2700억 엔(약 2조6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MB정권의 자원외교와 관련한 2014년 국정감사에서 한국가스공사가 캐나다 혼리버 등 3개 유전 개발 사업에 무리한 투자로 1조 원의 손실이 발생했던 점 역시 비슷한 사례에 해당한다.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개발업체들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뭉칫돈을 투자했던 금융업계가 손해를 보면서도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셰일에너지 사업이 이전의 IT나 금융과 같이 미국의 장기적 성장 동력이 되기엔 힘들어 보인다.
주변국과 갈등을 유발하는 미국의 성장
이러한 셰일에너지 논란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패권 질서문제에 있어 몇 가지 지점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이 셰일 에너지를 개발해 수출을 늘리고 에너지 수입을 줄인다면 당장의 무역수지는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중동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산유국들과 갈등이 생긴다. 미국이 에너지 수출을 늘릴수록 국제 에너지 가격은 떨어질 것이고 이는 중동 국가들의 타격으로 이어지게 된다. 기존 산유국들의 시장점유율도 떨어진다.
그동안 미국이 경제적으로 패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경제성장이 전 세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위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불렸다. 많은 국가들이 미국으로 수출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 올 수 있었고 미국은 그 상품들을 사주는 소비시장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전의 일본이나 독일, 지금의 중국 등이 이렇게 성장을 해 왔다. 따라서 미국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융화 등으로 미국 국민들의 자산소득이나 대출여력이 늘어날수록 다른 나라들은 수출을 늘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경제 회복이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의 성격은 과거 미국의 경제성장이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어 가던 구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더 이상 빚을 늘리면서 소비를 확대할 여력이 없다. 이전처럼 무역적자가 대규모로 쌓이고, 국가 빚이 늘어나는 구조를 미국이 감당하면서 경제를 운영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도 수출을 늘리거나 해외에 나가있던 공장들을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을 확대한다는 것은 정해진 크기의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의 싸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셰일가스도 마찬가지다.
패권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저 친구 말을 잘 들으니 먹을 것이 생기는 구나’ 하는 인식을 여타 국가들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계속 자기 것을 빼앗아 가기만 하는 친구의 말을 누가 들으려 하겠는가. 지금과 같은 구조 속에서 미국이 경기회복을 한다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들과 갈등의 소지를 낳을 요소들이 커진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패권과 새로운 세계질서
이런 논쟁에서 한 가지 더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더 이상 새로운 경제모델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단 것이다. 금융화, 신자유주의 모델의 상징이었던 미국의 경제가 2008년 파탄나면서 더 이상 미국식 경제모델이 진리인 양 따르고 모방하려는 국가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시대가 지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논자들이 내세우는 ‘셰일가스’는 세계를 주도할 새로운 경제모델이라고 볼 수 없다.
위 글은 시화노동정책연구소 뉴스레터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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